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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9)부론면 흥호리 순흥안씨 집성촌

1부: 사라져 가는 집성촌-1년에 제사 12번…일가친척 총동원 고민교 객원기자l승인200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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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론면 흥호리에는 순흥안씨 입향조인 안대선으로부터 17대손이 이어져 내려오며 살고 있다. 26가구 중 15가구가 순흥안씨이다.  
 

부론면 흥호리는 남한강과 섬강이 합수되는 지점으로 옛날 은섬포라 불렸다. 우리나라 12조창 중 하나인 흥원창이 지척에 있었던 탓에 늘 물산이 풍족하고 잘 살았던 곳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도로 양쪽으로 잘 정리된 논밭이 보인다. 비싼 농기계도 많고 집도 반듯반듯한 것이 역시 넉넉한 모습이다.

"저 마을 앞 도로는 일제시대 때도 있었어. 교통이 좋아서 살기도 좋았지. 지금도 그렇고." 안씨 어머니를 둔 이금영(82) 할머니의 말이다. 뱃길도 있고, 육로도 좋아서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 것 같은데, 흥호리 새말마을은 그렇지가 않다. 6.25때 완전히 불타버린 마을을 새롭게 다시 만들었다고 해서 '새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곳은 순흥안씨들이 대대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입향조인 안대선으로부터 17대손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6.25 전까지만 해도 마을의 90%인 70∼80가구가 안씨였다. 지금은 26가구 중 15가구 정도라고 한다.

"17살에 안씨네 집으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는데, 인심이 참 좋아. 여름이면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서 놀고, 겨울에는 마을회관에서 모여서 놀아. 점심도 해서 나눠먹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살아왔다니까." 윤명순(78) 할머니의 주름진 입가에 웃음꽃이 핀다.

취재를 간 날도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떡과 누룽지를 나눠먹고 있었다. 농번기에는 서로 손을 빌려주고, 농한기에는 벗이 되어 추운 겨울을 넘기는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온화하다. 모두가 친척이긴 하지만 서로 다툴 일이 있을 법도 한데, 사전모의라도 한 것 마냥 다퉈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땅콩농사도 하고 담배농사도 지었지만, 지금은 논농사와 밭농사가 대부분이다.

원주에 터를 잡은 까닭은?

고려 때 영화를 떨치던 순흥안씨는 조선 세조 때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456년 세조 2년 6월. 순흥부사 이보흠과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위해 관군과 합세하여 의병을 일으키려는 계획이 노비의 밀고로 세조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몰려온 병사들은 순흥을 초토화 시켰다고 한다. 순흥에서 흘러나온 피가 죽계천을 따라 10리에 이르렀다고 전해질 만큼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안정면, 동촌동 등 피끈이마을 앞까지 피가 흘러내렸다고 하여 '피끈이 비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순흥도호부의 인구 2천여 명 중 순흥안씨만 무려 700여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으로 금성대군과 이보흠 부사는 물론 어린 단종도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과 가깝기도 하지만 아마 이 난을 용케 피해 원주로 숨어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선조의 묘소와 귀중한 문화재 문헌들도 이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하지요.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참변 중의 참변이었지요." 종손 안태섭(62) 씨는 전한다.

   
 
  ▲ 1993년 산소 아래에 지은 사당. 종손 안태섭 씨가 수시로 드나들며 관리하고 있다.  
 

사당에 드리는 정성 유별날 정도

1993년 산소 아랫터에 사당을 지었다. 양지바른 곳에 청아하게 앉아있는 사당을 짓기까지 안 씨의 노고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을을 떠나지 않고 지키려면 사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원주에 있는 제실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지은 사당이예요." 안 씨의 사당 사랑은 유별나다.

지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관리가 잘 돼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다. 몇 년 전에는 마루에 먼지가 너무 많이 쌓이는 것 같아 유리문을 달았다. 제실 오른쪽으로는 음식 장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식당을 만들었다. 큰 대문 양 옆으로 작은 대문이 있는데, 별로 쓸모가 없는 것 같아 문을 달고 창고로 사용한다. 일 년에 한번 지내는 시제 때만 문을 열지만, 안 씨는 수시로 드나들면서 사당을 수리하고 손본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나요? 이 사당을 짓고 처음에는 일 년에 제사를 두 번 지냈었는데, 너무 번거롭고 힘들더라구요. 그래 어르신들과 의논해서 일 년에 한 번으로 바꾸었지요. 그리고 제삿날도 원래는 음력 10월 9일이었어요. 친척들이 많이 참석을 못하니까 매년 11월 둘째 주 일요일로 바꿨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젊은 사람들까지 한 오십 여명은 모이더라구."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종손의 노력 덕분인지 시제를 지낼 때마다 이곳을 찾는 친척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순흥안씨

순흥안씨는 지금의 경북 영주 순흥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다.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시대 군대조직인 흥위위의 정7품인 보승별장이었으며, 문성공 안향의 현달로 신호위의 정3품인 상호군에 추봉되었다. 안자미는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남은 부사공 안영유, 차남은 별장공 안영린, 삼남은 교서랑공 안영화를 기준으로 1·2·3파로 구분된다. 각파에는 명현들이 있는데, 1파는 4세인 문성공 휘 안향이, 2파는 5세인 문의공 휘 문개가 있으며, 3파는 6세 문정공 휘 축이 있다.

순흥안씨는 그러나 1456년 단종의 복위 계획이 탄로 나면서 초토화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세조·예종·성종의 3대 40년 동안에는 2품 이상의 관직에 오른 후손이 하나도 없다. 1698년(숙종 24년) 단종이 복위되면서 순흥부도 회복되었는데, 역신으로 몰렸던 인사들의 복권은 1704년(숙종 30년)에서야 이루어졌다.

복권 후 연산군과 중종 대에 안호, 안침 형제가 이름을 떨쳤고, 조선왕조의 마지막인 경술국치를 전후한 시기에 안병찬, 안중식, 안중근, 안명근, 안창호, 안재홍, 안익태 등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널리 이름을 알렸다.  

고민교 객원기자


"새 며느리 맞이하려면 제사 줄여야 할텐데…"

   
▲ 종손 안태섭 씨와 아내 이말희 씨

평생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종손 안태섭 씨는 마을 떠날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젊은 종손이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 마을 어르신들도 궂은 일 마다않고 종손을 돕는다.

"우리가 1년에 제사를 12번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동네 일가친척들이 모두 합심해서 도와주니까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해 봤어요. 시집와서 42년짼데 아직까지 친정 한 번 가본 적이 없지만 후회는 없어요. 갈려고만 마음먹으면 못 갈 것도 없지만, 내가 없으면 누가 손님접대를 하나 싶어서 갈 수가 없더라고. 그러니 외지로 나가 산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지요." 천상 종손의 부인으로 타고 난 이말희(63) 씨다.

3년 전까지 모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달랑 두 부부만 살고 있다. 딸만 내리 다섯을 낳다가 빌고 빌어서 낳은 아들이 쌍둥이였단다. 조상의 음덕으로 낳은 아들들이라 믿기에 조상 제사만큼은 온 정성을 쏟는다는 종손부부.

"집안에 경조사가 있으면 제사를 안 지내게 되잖아요. 그런데 제사를 안 지내고 나면 어찌 그리 마음이 허전한지 몰라요. 해야 할 일 안한 것처럼 찝찝하고 영 서운하곤 해요." 조상을 모시는 종손부부의 마음이 넓고 크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엄청 힘들더라구요. 시할아버지 내외분 계시지, 시아버님 내외분 계시지. 게다가 종손이니까 손님이 얼마나 많이 찾아와요. 하루 종일 방바닥에 앉아 본적이 없는 날도 있었다니까. 모르고 시집온 것도 아닌데 즐겁게 받아들이자 마음 단단히 먹었지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턴 그리 힘들지 않더라구요. 또 애들 아버지가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오히려 제사 지내는 날이 덜 힘들었지요. 모두들 함께 도왔으니까."

하지만 최근 종손부부는 아들의 혼사를 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큰아들이 사귀는 여자한테 제사가 이렇게 저렇게 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란 거예요. 그래서 종손이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고 합디다. 새로 들어올 식구를 위해서라도 제사를 일 년에 두 번만 할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안 씨는 제사를 줄여야하는 일이 섭섭하지만 아들을 위해서 뭔가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말하면서 쓸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 주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느티나무  
 

 


고민교 객원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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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느티나무

1993년 산소 아래에 지은 사당. 종손 안태섭 씨가 수시로 드나들며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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