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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3)호저면 충주 지씨 집성촌

1부사라져 가는 집성촌-호저면 대덕1리 고민교 객원기자l승인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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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저면사무소에서 북원주 IC를 지나 2~3분 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다리가 보인다. 대덕리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대덕교다. 대덕교를 건너 진행하다 심향영육아원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기에도 30년은 됐음직한 오래된 집들로 60~70년대 농촌마을이 연상된다.

오랜 세월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유지해온 충주 지씨 집성촌이다. 20여년전만 해도 60여세대 중 40세대가 지씨였지만 지금은 30세대 중 19세대가 지씨 문중이다. 이들 외에 최씨와 조씨 등이 살고 있는데 지씨 문중과 인척간이 많다.

이들이 이곳에 정착한 것은 5백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풍군수로 있던 지손(池遜)이란 분이 관직을 벗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곳을 찾다가 지형과 산수가 좋은 금사동(지금의 대덕리)에 정착해 16대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이렇듯 오랫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한 번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지리적 여건 때문으로 보여진다.

대덕1리는 섬강이 U자형으로 싸고돌면서 동쪽과 서쪽이 강이고 뒤로는 호암산이 버티고 있어 사실상 육지 속 섬과 같은 마을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길과 다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홍수가 나거나 물이 불면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오지 마을이었다.

"옛날에는 나룻배를 타고 다녔어. 친정 엄마가 다니러 왔다가는 얼마나 울고 가셨는지…오지도 이런 오지마을이 없었다니까" 이 마을로 시집온 지 57년째라는 신순금(75) 할머니가 50여년 전을 회상했다. 당시에는 길이 없었던데다 사방이 높은 고개로 막혀 있어 외부로부터 고립된 마을이란다. 실제로 근절고개, 삼상고개, 서낭당1고개, 쇠절이고개가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그 때는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는데…'올라갑니다' 그러는거야.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데 몸이 뒤로 획 젖혀지더니 이번에는 '내려갑니다' 그러는거야. 이번엔 몸이 앞으로 확 쏠렸지…나중에 알고 봤더니 마을로 들어가는 고개가 그렇게 가파랐던거야" 신 할머니에 따르면 당시 사근절고개를 '고생하러 들어가는 고개'로 불렀다고 한다.

입향조 지손의 14대손인 지운한(73) 노인회장은, 그러나 오지여서 좋은 점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6.25동란 때는 우리 마을이 피난처였어요. 한 15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외지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어와 발 디딜 틈도 없었다니까…그때는 섬강 물도 지금보다 많았지. 뭍에 사는 사람들은 많이 죽었지만 우리 마을은 고립돼 있었던 덕택에 피해가 전혀 없었지…"

교통이 좋아지면서 외지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지금은 5가구만 젊은 사람들이 있고 나머지는 노인들뿐이다. 젊은 사람들이 있는 집은 지붕에서 차이가 난다. 지붕이 오래된 슬레이트로 된 집은 노인들만 사는 집이기 때문. 노인들끼리 살다보니 고칠 생각을 안한다. 대덕1리 지동배(73) 반장은 "이대로 간다면 지씨 집성촌으로 이어온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들은 매년 음력 시월 초나흘이면 사근절고개 중간쯤에 있는 사당에서 시제를 지내고 그 다음날부터는 5~6차례에 걸쳐 각 집안별로 제사를 지낸다. 이때는 온 동네에 음식이 넘쳐나는 등 잔치분위기다. 사당은 위폐만 모시고 있어 아담하다. 문단속은 안하지만 지자한(71)씨 내외가 관리를 맡고 있다. 사당 바로 아래에는 십여 구가 넘는 조상 묘소가 잘 단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산소는 근처 호암산에 모셔져 있다고. 마을 종친회 일은 지연화(59)이장이 맡고 있지만 재 원주 충주지씨 종친회장은 판부면 금대리에 살고 있는 지석환(85) 씨가 맡고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문중이거나 인척인 대덕1리 주민들 중 일부가 경로당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앞줄 오른쪽(흰색점퍼)이 지운한 노인회장.  
 
   
 
  ◇사당에 모셔져 있는 위패.  
 


대덕1리 명물 '장군수 샘'

대덕교를 타고 마을 입구로 들어오면 길 오른쪽 논 가장자리에 비닐하우스로 덮어 놓은 우물이 보인다. 힘쓰는 장수가 많이 나와서 '장군수 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이 소문을 듣고 다시는 장수가 나지 않게 하려고 우물 속에 쇠말뚝과 엄나무말뚝을 박아 혈을 질러 놓았다고 한다.

   
 
  ◇비닐하우스 안은 샘물이 나오는 곳으로 장수가 많이 배출됐다고 해서  '장군수 샘'이라 불린다.  
 

그 후부터 장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약 50여 년 전 지기선이라는 마을 사람이 우물 공사를 하면서 나무말뚝 두 개를 빼냈다고 한다. 지운한(73) 노인회장은 "당시 쇠말뚝은 나오지 않아 제거하지 못했지만 나무말뚝을 제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장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샘에서는 지금도 물이 나오는데 샘에 시멘트 뚜껑을 덮어놓고 옆에 구멍을 내 빨래터를 만들었다.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있어서 이 물을 마시지 않지만, 지씨들 논으로 흘러들어가니까 마시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지…여름엔 물속에 발을 넣고 조금만 있으면 발이 시릴 정도고, 겨울에는 차갑지가 않은 명물이여" 실제로 물속에 발을 담그고 조금 있으니 온 몸이 얼얼해졌다. 

고민교 객원기자


 

   
 
  ◇위패를 모신 사당.  
 

유래 충주 지씨는 중국 성씨다. 도시조(都始祖) 지경(池鏡)은 중국 송나라 홍농 사람으로 960년(광종 11)에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지경의 오대손 운암공이 문하시랑 평장사로서 충주지방에 장가드시어 충주에 사시므로 그때까지 봉읍이 없다가 관직이 높아져서 총원백을 봉하였다. 충주지씨대종회에 따르면 이때부터 본관을 충주로 하였다는 기록이 청구사림과 해동성보에 실려 있다.

한말 의사 지석영과 지성천 장군

인물 지석영(1855~1935)은 고려의 명장 충의군 지용기의 후손으로 한말의 의사이자, 문신이며 국어학자이다. 개화사상가이자 시인인 강위의 밑에서 유길준과 함께 공부한 지석영은 종두법을 실시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종두법은 천연두를 예방하는 일종의 예방접종법이다.

두창, 마마라고도 불리던 천연두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기도 했지만 곰보가 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1876년 일본에 다녀온 스승 박영선으로부터 종두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79년 부산에 내려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종두법을 익힌 뒤 두묘(천연두 백신의 원료)와 종두침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처가에 들르게 된다.

2살 밖에 안 된 처남에게 최초로 종두를 실시한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개화운동가로 몰려 피난을 해야 했고, 종두장이 불태워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청천(1888~1957)장군은 지용기장군 15대손이며, 조선의 지여해장군, 지계최장군의 후손이다. 지석영과는 재종숙 사이다. 본명은 지석규인데 독립운동을 할 당시 왜군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의 성씨인 이씨로 바꾸고, 이름도 청천이라고 바꾸는 바람에 이청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9년 일본으로 유학,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군인으로 있었으나 1919년 만주로 망명했다. 망명후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으로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했다. 1920년에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간부로 청산리 대첩 후 일본군 보복을 피해 신흥무관학교를 폐교하고 병력을 간도로 이끌었다.

이후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에 임명돼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광복 후 귀국했다.


고민교 객원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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