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단구동·관설동서 완충녹지 수목 정비사업
수목 전문가 "나무 생장 지대 따라 정비법 달라야" 

도로변 녹지에 있는 수목의 무분별한 제거로, 도심 속 완충녹지 기능 상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종, 생장 지대 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정비는 도심 미관 저해와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원주시는 단구동과 관설동에서 '완충녹지 수목 정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 완충녹지에 식재된 스트로브잣나무(이하 잣나무)를 정비해 나무의 생장 공간을 더 확보하겠다는 게 이번 사업의 취지다. 하지만 최근 수목 정비가 일부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장 취재 결과, 한창 수목이 정비되고 있는 단구·관설동 1km 구간에서 잣나무 가지가 과도하게 잘려나가고 일부는 밑동만 남긴 채 제거돼 녹지에 그대로 적재돼있다. 

▲ 관설동 치악고교 앞 완충녹지에 식재된 20여 년 수령의 스트로브잣나무 10여그루가 통째 잘려있다.

박경리문학공원 인근 교차로에 식재된 잣나무는 인근 상가 간판 등을 가린다는 이유로 과하게 전지돼 키가 절반으로 줄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시야 확보와 무관한 지점에 심은 단관 근린공원 일대 잣나무도 군데군데 머리와 몸통이 통째 잘려나가고 가지도 무차별하게 전지된 상태다. 

▲ 박경리문학공원 일대에 무성하게 우겨져있던 스트로브잣나무의 키가 절반으로 줄고 가지는 잘려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주시는 수목 생장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원주시에 따르면 해당 완충녹지 내 잣나무는 과거 단관택지 조성 당시 심어 수령이 20년 넘었다. 택지 조성 초기, 완충녹지 형성을 위해 수목을 밀집해 심다 보니 현재는 생장 공간이 협소해져 잣나무들이 수직·수평 생장을 균형 있게 하지 못하고 위로만 자라는 상태다. 잣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으면서 인근 건물에서는 시야를 가린다는 민원이 잇따르며 20년 이상 수령의 잣나무들이 통째 잘려나가고 있다. 

원주시 관계자는 "스트로브잣나무 특성상 생장이 빨라 최근 가지끼리 얽혀 서로의 생장을 막고 있는 상태"라며 "잣나무를 정비하고 장기적으로는 대체 수목을 식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업체가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초 정비 계획보다 일부가 과하게 잘려나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수목 전문가들은 가지치기 등 정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나무 생장 지대에 따라 수목 정비 등 접근법은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도로와 주택가 사이 언덕형태로 형성된 완충녹지는 도로 소음과 매연, 분진으로부터 택지를 보호하고 완충하는 기능을 한다. 때문에 완충녹지에는 스트로브잣나무 등 정화작용에 탁월한 수목을 밀집해 심어 녹지대의 밀도를 높이는 게 일반적이다. 수목이 도심 속 완충녹지의 기능을 한층 보강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시의 정비작업은 이러한 생장 지대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통상적인 가로수 정비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진우 가로수 시민연대 대표는 "도로변의 가로수가 너무 높이 자랄 땐 재해 위험 등을 이유로 나무의 키를 자르기도 하고 가지치기를 해주지만, 완충녹지의 수목은 녹지대의 밀도가 높을수록 완충녹지의 기능을 잘 하는 것으로 판단해 가로수와 같은 수준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강한 가지치기가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강한 가지치기가 약한 가지치기보다 힘이 덜 들고 돈도 덜 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완충녹지 내 잣나무가 통째로 제거되며 주민들도 "과도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진에버빌5차 입주민 김형택(52) 씨는 "굳이 녹지대에 있는 나무를 잘라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름이면 녹지대에 나무가 우거져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없는데, 잘 자란 나무들을 듬성듬성 다 베어놔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원주시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조례' 제11조(나무은행)를 통해 수목 정비 및 관리에 대한 기반을 마련해 놨다. 전문가 자문 등을 위해 '도시공원위원회 설치', '도시숲 등의 조성·관리 심의위원회' 등을 조례로 제정했지만 이 같은 조례를 적용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사업이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승현 생태학교 지구 공동의 집 대표는 "어차피 벤 상태라면 지금은 나무나 가지를 쓸모 있게 처리하는 것 또한 지자체의 과제"라며 "원주시가 '나무은행'과 같은 조례를 만들어 놓은 만큼, 이쯤에서 관련 조례들이 얼마나 실효 있게 운영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