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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소초면 제주 고씨 화전군파 집성촌

사라져 가는 집성촌-소초면 둔둔2리 고민교 객원기자l승인20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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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사당. 종친회장이 관리를 맡고 있다.  
 

횡성으로 가는 5번 국도를 달리다 원주공항 못 미쳐 우회전해 2~3분 정도 가면 아담한 시골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 고씨 집성촌인 소초면 둔둔2리다. 얼핏 보면 아스팔트 도로들 사이로 집들이 흩어져 있어 집성촌이라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시내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숨겨진 마을이었다.

둔둔리라는 지명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둔(屯)이 군대에서 진을 친다는 뜻이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지형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마을 전체 분위기는 양지바른 곳에 띄엄띄엄 자리 잡은 집들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곳 둔둔2리에 터를 둔 사람들은 제주 고씨 화전군파다. 입향조인 고경을 시작으로 18대손이 살고 있다. 1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54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100여 세대 중 절반정도가 제주 고씨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50여년을 살고 있다는 고영철(51) 이장은 "이상하게도 이 마을에 발을 붙이면 외지로 나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어렸을 때만 해도 주민 대부분이 고씨였는데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정착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고씨 종친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광영(66) 씨를 만났다. 고 회장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갔던 때를 제외하면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농토가 많지도, 평지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고 회장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먹고 살기는 힘들지만 마음이 편해서 눌러앉아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 친인척 관계여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운명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고 회장은 "이 동네가 텅텅 비었던 적이 딱 한번 있었지요.

6.25전쟁시절. 열 살쯤 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온 마을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우리 집 식구들은 충북 음성까지 걸어서 갔지요. 다시 돌아와 보니 80채 정도였던 집들이 몽땅 타버리고 두어 채만 남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난 갔던 동네사람들이 한 집도 빼지 않고 모두 돌아왔어요. 처음에는 움막을 짓고 살다가 차근차근 집다운 집을 지어 살았지요. 그렇게 80여 가구가 다시 모여 살았고, 죽거나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을 따라간 사람들 외에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고 회상했다.

이 마을 고씨 중 최고령자는 고창주(78) 할아버지. 6.25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다. 아들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초등학생인 손자는 고경의 18대손이다. 고 할아버지에 따르면 매년 음력 10월 5일에 중시조를 시작으로 10대조 이상 조상에게 제를 올린다. 10대조 이후 조상들은 각 종파별로 6일과 7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대동제로 불리는 이 제사는 100여명이 넘게 모이는 연중 최대행사인데 지금은 참석자가 50여명으로 줄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 마을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참외 주산지 였다고 한다. "마을 온 밭에 노란 참외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이 얼마나 좋았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는 고 회장은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참외농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논농사와 밭농사가 대부분이고 복숭아 과수원이 조금 있을 뿐이다. 둔둔리는 행정구역은 원주시에 속해있지만 생활권은 횡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장을 보는 일도 횡성시장이나 횡성 장날을 이용한다.

마을 한가운데는 사당이 있는데 사당 관리는 종친회장이 맡고 있다. 사당이 건립되었을 당시만 해도 장손이 했지만, 외지로 나가 있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종친회장이 관리한다. 사당문은 녹이 슬어 녹녹했지만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고 서 있는 모양이 기개가 느껴졌다.

사당 내부는 일 년치 먼지가 고스란히 쌓여 있기는 했지만 단아하면서도 공손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닫힌 문을 열어서 널찍이 보여주는 고 회장의 뒷모습이 경건해 보인다. '제주고씨 족보산도'와 가계도가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산소 위치를 정확히 표시해 놓아 후손들이 묘지를 찾기 쉽도록 되어 있다.

"사당관리와 제사 지내는 것만 잘 해도 요즘과 같은 현대에 뿌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큰 보탬을 주는 일"이라는 고 회장은 사당 곳곳에 칠이 벗겨져 보수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손을 못 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사당과 5분 거리인 산소도 잘 관리되고 있다. 1대 할아버지 묘소는 둔둔초등학교 앞산에 모셔져 있다. '둔둔2리 산촌개발'이라고 쓴 비석 뒤로 새로 지은 건물이 있고, 너머엔 13대 할아버지와 자손들의 묘지가 있다. 건너편 산에는 2대 이후 선조들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오백여년이 넘는 세월을 흐트러짐 없이 살아 온 둔둔리 고씨 집성촌. 바다 수면처럼 잔잔하고 고요했지만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였다.  

 

   
 
  이 마을 고씨 중 최고령인 고창주 옹(왼쪽)과 고광영 종친회장.  
 

제주고씨 화전군파 유래

화전군파는 고을라왕을 시조로 하여 중시조 11세손인 고려 고종 때의 고인비 후손이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고구려 고씨와는 좀 다르다.

그러나 '을라'라는 이름이 부여어로서 '족장'이라는 뜻이며, 부여와 고구려 외에는 사용되지 않는 언어라는 점에서 탐라로 흘러와 지배세력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의 요양 고씨가 동명성왕 고주몽을 시조로 하는 고구려 고씨인데, 1824년에 횡성 고씨의 족보에서 고구려 고씨임이 밝혀져 일반에게 알려졌다.

화전은 횡성의 옛 이름으로 그 후손들이 강원도와 영남지방에 횡성 고씨를 본관으로 하여 살고 있다. 하지만 고주몽의 후손들도 횡성 고씨라 칭했기 때문에 조선씨족통보에도 횡성 고씨의 시조가 둘로 기록되었었다.

1971년 종사(宗史) 발간을 계기로 혼돈을 피하기 위해 화전군 인비의 후손은 본관을 제주로 환원하였다고 한다.

둔둔리의 입향조인 고경은 본래는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다고 한다. 큰아버지에게 손이 없자 입양되었으며,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고 전한다. 횡성과 멀지 않는 둔둔리에 터를 잡고 본가를 오가며 살았다. 18대를 이어오고 있다.

   
 
     
 

둔둔리가 배출한 인물

화전군파의 인물로서는 고형산(1453~1528)을 들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강원도 관찰사와 우찬성 벼슬을 하였으며, 정직한데다 부지런하고 검소해서 백성들의 신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인조 때 묘를 훼손당하는 치욕을 겪기도 하였다. 이유인즉슨, 대관령 고갯길이 우마차가 다닐 수 없는 오솔길이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형산이 사재를 털어 수개월간에 걸쳐 길을 넓혔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문진에 상륙했고, 잘 닦인 대관령 고갯길을 이용해 쉽게 한양을 함락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후일 길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그 무고함이 입증되고 재평가 되어서, 위열공이라는 시호와 함께 횡성군 정암리 망백마을 주변의 사방 십리 땅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둔둔리에서는 고경 이후 제4대 선조인 고득남 할아버지가 오늘날 도지사 정도의 벼슬을 하셨다. 이후 둔둔리에서는 크게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큰 어려움 없이 무탈하게 살아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고근영(육군장성 출신) 씨와 고수영(전 원주전화국장) 씨가 둔둔리가 낳은 최근의 인물이다.

 

 

 


고민교 객원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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