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과 함께 의료기기는 원주를 살리는 '먹거리 산업'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139개 업체에서 2천611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매년 5%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주에 의공과 대학이 들어서고 지자체가 산업을 육성하면서, 산업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급격히 성장하는 의료기기 산업의 면모를 살펴보고 그 속에 원주의료기기 산업은 어디에 와있는지, 원주의료기기 산업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취재했습니다.

글 싣는 순서

1.원주의료기기산업 태동
2.한계에 다다른 특화산업
3.대학과 원주시의 산업 육성
4.첨복단지와 정부정책 방향
5.유럽의 실리콘밸리 드레스덴
6.산·학·연·관 지역경제 구심점 

끝없이 성장하는 의료기기 시장

동화작가 이솝이 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시골농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쥐면서 금세 마을의 부호가 되지만,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거위를 죽이기에 이른다.

재미있는 점은 이솝이 활동했던 BC 6세기나 그로부터 약 2천700년 후인 오늘날이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아름다움과 건강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구, 끝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젊어지려는 인간의 욕망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욕구는 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질병 치료가 주목적이었지만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예방과 진단 중심으로 산업의 무게추가 움직였다. 예전에는 성형수술이 사치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자신을 가꾸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의료산업과 뗄레야 뗄 수없는 의료기기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규모는 2010년 3조9천27억원에서 지난해 5조1천76억원을 기록해 5년 만에 1조2천여억원 증가했다. 2013년 대비 2014년은 1년 새 10.2%나 상승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2.8%로 예상한 것과 비교하면 관련 산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 알 수 있다.

생산규모도 시장규모만큼 증가세가 빠르다. 국내에는 2천786개의 의료기기 업체가 있고 이들은 지난해 4조5천533억원의 의료기기를 생산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1.3%에 달했다.  

지난해 생산실적 상위 품목으로는 치과용임플란트(5천981억원), 초음파영상진단장치(4천217억원), 소프트 콘택트렌즈(1천418억원) 순이었다. 치과용 임플란트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수요증대와 해외 수출 증가에 힘입어 생산이 7.5% 늘어났고 소프트콘택트렌즈 생산도 미용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작년에 비해 크게 증가(10.6%)했다.

전산화단층엑스선촬영장치(CT·43.1%)는 전년 대비 생산이 가장 크게 증가했고 디지털엑스선촬영장치(32.7%), 레이저수술기(28.5%), 의료용영상처리용장치·소프트웨어(22.7%)가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해외 시장규모에 비하면 국내 시장규모는 턱없이 작아 성장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파악한 세계의료기시장 규모는 351조9천306억원(3천180억달러). 국내 시장이 세계의 1.4%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시장은 미국, 일본, 독일 등에 이어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주의료기기 산업 역사

국내에서 의료기기산업이 가장 발달된 도시는 원주이다. 1998년 흥업면 보건지소를 리모델링해 의료기기 창업보육센터를 개소한 이후, 원주는 의료기기 창업과 보육을 힘쓰며 산업을 육성시켰다.

흥업면 창업보육센터 내 10여개 기업이 시초였는데 지금은 태장동 원주의료기기산업기술단지를 비롯해, 첨단의료기기테크노타워, 동화첨단의료기기산업단지 등 9개 단지에서 139개 업체가 의료기기를 생산한다. 

2014년 말 기준 원주의료기기 산업은 국내생산 2천94억원, 수출 2천869억원을 기록했다. 강원도 의료기기 산업 중 원주가 차지하는 생산비율은 86.9%, 수출은 86.5%로, 도내의료기기 산업을 원주가 압도하고 있다.

전국과 비교해도 생산 4.6%, 수출 11.1%를 기록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 선도도시로서의 명성이 높다. 이렇게 눈부신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역대학과 지자체 기업들이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은 연세대 원주캠퍼스였다. 연세대는 ▷1978년 연세대 원주분교 설립 ▷1990년 일산 보건과학대학 매지캠퍼스 이전 ▷1995년 의공학연구소 설립 등으로 지역 내 의료기기 연구인프라를 확충해 나갔다. 

1997년 원주시와 함께 '의료전자기술연구집단화단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노력덕분이었다. 대학이 의료기기 기술을 연구하고 기업에 적용해 의료기기 산업도시를 육성하는 것이 주 사업내용. 이는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 산업도시의 비전을 대내·외에 천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끝난다. 김기열 전 원주시장은 "독특한 아이템이었기에 선정을 확신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지자체 과업보고회가 열렸을 때도 다른 지자체보다 훨씬 독창적이었고 다각도로 정부를 설득했다"며 "반드시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너무나 아쉬웠고 오기가 났다.

연세대 윤형로 교수님을 만나 '그럼 우리끼리 합시다'라고 제안을 했고 그것이 흥업면 보건지소에 창업보육센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1999년 원주의료기기 창업보육센터는 산업자원부 지역기술혁신센터(TIC) 사업에 선정된다. 원주시는 이를 첨단의료기기기술혁신센터(TIC)로 명명하고 5가지 사업에 주력했다.

▷고가의 첨단계측기기를 구입해 기업에 지원하는 공동기기·시설 지원사업 ▷국내·외 의료기기산업 정보망을 구축해 이를 제공하는 정보지원사업 ▷센터·연구원을 활용한 기술인력의 교육 및 훈련사업 ▷전국 산업계, 대학, 연구소간의 교류체계를 구축하고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기술 및 인력지원 사업이 그것이었다.

TIC는 2003년 5월 흥업면에 첨단의료기기 테크노타워가 준공되면서 의용계측 및 재활공학 연구센터(RRC), 정보지원센터, 교육센터와 함께 이전하게 된다. 이것이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설립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 (주)씨유메디칼시스템 전상윤 제조총괄 본부장.

작은기업에서 강소기업으로…향토기업 (주)씨유메디칼시스템

원주시와 연세대가 원주의료기기 산업을 위한 인프라를 차곡차곡 조성해 나가는 동안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원주시는 시골 한편에 창업보육시설을 마련한데 이어 태장동에 기업을 집적할 수 있는 소규모 단지(원주의료기기산업기술단지, 1999년 준공)를 조성했다.

(주)씨유메디칼시스템(대표: 나학록, 이하 씨유메디칼)도 2001년 이곳에서 설립됐다. 전상윤 (주)씨유메디칼시스템 제조총괄 본부장은 "처음에는 10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서 창업멤버 5명이 제품개발에 매달렸다"며 "사무실에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 그리고 시험할 수 있는 계측기 한 대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씨유메디칼이 생산하는 심장충격기는 일반 의료기기보다 허가 등급이 높았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를 위한 시험테스트만도 수십번 해야 했다.

TIC에서 보유한 계측기와 테스트 장비는 물론 연세대 인력까지 투입해 함께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당시 TIC에 도입된 3D모델링기로 Mock-Up(시제품)도 만들 수 있었고 국내·외 시장조사나 해외 인허가에 관련된 자료수집, 전시회 참가를 위한 홍보물 제작도 지원을 통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전상윤 본부장은 "테크노밸리에서 해외 의료기기 시장을 파악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설리번 리포트를 대량 구매해 업체에게 제공했다. 리포트가 상당한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단에서 흔쾌히 지원해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진출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03년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이자 세계에서는 6번째로 씨유메디칼의 심장충격기 CU-ER1이 개발됐다. 씨유메디칼은 곧바로 국내 유수의 병원이나 대학, 연구소 등을 타깃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필립스 같은 외국제품의 벽에 막혀 해외시장 개척을 결정하게 된다. 

유럽시장에 눈을 돌려 독일접식자사에 제품을 납품한 것이 첫 성과였다. 독일에 CU-ER1을 납품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국내에서도 씨유메디칼 제품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은 해외 70개국에 심장충격기를 수출하고 240억 규모의 매출액을 자랑하는 강소기업이 됐다.

"여러 가지 기술이나 장비, 마케팅, 인증까지 지원되기 때문에 사업의지와 제품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곳이 원주"라고 밝힌 전 본부장은 "우리 회사가 지역사회를 통해 많은 성장을 한 만큼 다른 초기기업들도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공헌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정완길 원장.

정완길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원장 
"창업·수출 중점지원 할 것"

의료기기산업이 왜 중요한가?

인간수명이 100세까지 이르는 시대가 되었고 그 만큼의 보건의료 수요도 증가하게 됐다. 

소득수준도 높아져서 사람들이 건강관리나 복지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건의료 서비스는 국가 단위를 넘어 글로벌 대응체계를 구축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현대 의료기기산업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설명해준다. 

실제로 의료기기 산업의 시장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세계시장규모는 3천500억불 정도 된다. 이는 전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와 비슷한 규모이다. 

2020년 즈음에는 자동차 시장 정도인 5천억불까지 성장한다. 우리나라는 ICT(정보통신기술)에 경쟁력이 있어 국가적인 역량을 조금만 투자하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원주의료기기 산업의 위상은?

전국 의료기기 업체가 2천600여 곳 정도 된다. 이중 코스피나 코스닥같은 주식시장에 상장한 업체가 채 20여개가 안된다. 중견기업도 100개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원주 139개 업체 중 상장기업은 6개, 중견기업은 10개나 보유하고 있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2009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됐다는 점이다. 

정부가 대구와 오송을 첨복단지로 지정하고 나서 상대적으로 원주에 지원되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지방정부도 2018동계올림픽 조성사업에 재원이 쏠려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지원 여력이 크지 않은 것이 문제다.

산·학·연·관 네트워크 복원을 추진하는 것 같다.

금년부터 상호 관계성, 친밀성을 높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업체를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매월 한 차례씩 CEO포럼을 개최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경제협력권 사업이나 투자사업을 통해서 기업들에게 기술이나 연구, 인증지원 등도 제공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업활성화, 해외마케팅 역량 확대, 융복합화를 통한 의료기기산업 성장을 모색 중이다. 창업은 창업보육센터나 연구실 창업 등 순수창업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원주 의료기기산업 발전전략은? 

선두기업들이 특정기술이나 사업분야를 분리해 창업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해외마케팅은 선진국과 개도국 그리고 특수시장을 나눠 접근전략을 짜고 있다. 

우선 미국 조달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원주에서 만든 의료기기를 미국정부가 구매할 수 있도록, 기업들과 협조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이다. 미국 조달시장에 진출하면 그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캐나다나 다른 선진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 

개도국 시장엔 우리 기업들 진출이 어렵다. 따라서 정부 ODA(해외원조사업)를 통해 개도국 보건의료시장 진출을 구상 중이다. 때에 따라서는 현대나 삼성같은 종합상사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특수시장은 완제품 위주의 원주의료기기가 진입하기 어렵다. 현지에서 부품을 생산해 시장에 진출하는 현지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원주는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자동차부품 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자동차부품 업체 중 ICT를 활용해 지역 의료기기산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원주의료기기 산업의 목표는?

IT·BT·NT처럼 메디컬 테크놀로지 분야가 존재한다. 의료기기와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이를 아우르는 기술들의 종합체가 메디컬 테크놀로지이다. 욕심이지만 내 비전은 원주가 세계중심의 메디컬 테크놀로지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원주가 대한민국 의료기기 산업의 중심이 되고 전 세계의 의료기기 메카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동안 시민들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셔서 원주의료기기 산업이 획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셔야 한다. 그리하면 원주가 세계적인 메디컬 테크놀로지의 중심센터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