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레스덴 구시가지, '독일의 피렌체'라 불릴만큼 도시가 아름답다. 외자 유치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사진제공: 드레스덴시)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맹렬했던 연합군의 폭격은 드레스덴의 90%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드레스덴이 자랑했던 중세 유산은 산산조각이 났고 산업 성장은 멈췄습니다. 그러나 통독 후 드레스덴은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산·학·연·관이 시너지를 발휘해 지금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습니다. 원주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들을 취재했습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189㎞ 떨어진 드레스덴은 작센 주(州)의 천년 주도이다. 궁전교회, 츠빙거 궁 등 르네상스부터 중세에 이르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많고, 경치가 아름다워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유럽인들은 드레스덴을 가리켜 '독일의 피렌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움 이면에는 기구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막으로 치닫는 1945년,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도시의 90%가 파괴됐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쉴러가 사랑했던 건축·자연유산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된 것이다. 드레스덴의 경제도 일순간에 무너졌다.

전쟁 전에는 독일에서 4번째로 큰 산업규모를 가졌지만 이도 다 옛말이 됐다. 전쟁이 끝나 동독에 편입됐어도 극소수의 제조업 이외에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어,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던 건축물도,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 된 이후에나 복원 작업이 가능했다. 

이러한 드레스덴이 통독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다. 공산주의 하에서는 모든 소유가 작센 주 정부 소유였지만,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전쟁 전의 토지나 건물들의 재산권을 본 소유주에게 되찾아 주려는 노력들이 지속됐다. 기업투자유치에도 힘썼다.

드레스덴 시 Ferdinand Ruchay 경제진흥청장은 "동독 체제 하에 있던 건물이나 토지가 사유재산이 되면서 원래의 귀속자를 찾는 과정이 힘들었다"면서도 "재산의 원 소유자를 찾아 보상에 힘쓰는 한편 투자자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이끄는 경제 전략을 펴왔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하에서 변변한 경제수치조차  없던 도시가 2012년 현재 15억1천만유로(한화 약 20조원)의 지역총생산(GRDP)을 기록하는 첨단산업도시가 됐다. 이는 독일 작센주 전체 GRDP의 1/6에 해당하며 원주와 비교해서는 4배 규모이다.

▲ 드레스덴 미대

도시가 돈을 잘 버니까 통독 직후 20%에 달했던 실업률도 지난해 7.9%까지 떨어졌다. 출산율은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 뮌헨을 제치고 2009년 이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독일에선 유일하게 가구당 부채가 0원이며, 최근 1~2년 사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고가의 신규 주택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독일의 실리콘밸리 드레스덴…경제성장의 비결은 잘 갖춰진 연구인프라

도시를 가로지르는 엘베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드레스덴은 중세시대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괴테가 유럽의 발코니라 칭했던 '브릴 테라스'를 비롯해, 궁전교회, 드레스덴 미대, 성모 교회, 젬퍼오페라 하우스 등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거의 다 파괴됐었다. 하지만 폭격으로 산재된 벽돌 하나, 유물 하나를 시민들이 일일이 모으는 오랜 노력 끝에 옛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드레스덴 시민들의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인지 드레스덴에는 일 년 내내 문화·예술 축제로 들썩인다. 미국 뉴올리언스 축제와 더불어 세계적인 축제로 꼽히는 딕시랜드 재즈 페스티벌엔, 매년 50만명의 재즈 팬이 몰려온다.

원주의 다이내믹 페스티벌보다 더 자유스러운 드레스덴 거리축제 BRN(Buntes Republik Neustadt)에서는 독일과 유럽의 젊은이들이 도시 전체를 광란의 파티장으로 물들인다. 드레스덴의 겨울축제 명소인 슈트리첼마르크트 시장은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한해 100만명이 찾고 있다. 

문화 기반도 잘 갖추어져 있다. 면적은 원주의 1/3밖에 안 되지만 드레스덴에는 57개의 박물관과, 40여개의 미술관(갤러리 포함), 37개의 오페라하우스와 극장, 80여개의 도서관이 있다. 문화예술 기반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현실과 비교해보면 드레스덴은 예술의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 드레스덴 월드트레이드센터

하지만 드레스덴의 관심사는 예술보다 산업에 더 쏠려있다. 구시가지에서 차를 타고 10여분정도 달리면 은빛 건물의 글로벌기업, 중소기업, 연구소가 한데 모여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부의 노력이 컸다. 통일직후 독일 연방정부와, 작센주, 드레스덴 시는 첨단 산업육성을 골자로 한 '드레스덴 부흥계획'을 발표했다. 

세계굴지의 연구소를 유치하고 지역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세계적인 응용과학 기술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는 독일 내 66개 연구소 중 중 11개를 드레스덴에 할애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33명이나 배출한 막스플랑크 연구소도 전 세계 70개 연구소중 드레스덴에만 3곳을 두었다. 이외에도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연구소 등 45개의 응용기술 연구기관이 드레스덴에 있다. 독일 최고의 공학대학으로 꼽히는 드레스덴 공대는 기초연구 성과를 내놓고 프라운호퍼 등의 응용연구 기관은 이 성과물을 토대로 산업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탄탄한 연구인프라를 바탕으로 드레스덴은 AMD, 인피니온, 지멘스, 모토롤라 등 글로벌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 시 정부는 드레스덴 투자기업들에 공장용지 확보와 건물신축비용 지원, 사업 확장·투자유치 승인 절차 간소화 등 애로사항들을 신속히 해결해 주고 있다. 실례로 지멘스와 인피니온은 공장신축 비용의 25%, 20%를 지원받았다. 

글로벌기업들이 드레스덴에 둥지를 틀면서 협력기업들도 드레스덴에 입성해 현재 드레스덴에는 1천500여개의 유수한 기업들이 활동 중이다. 연구인력 1만5천여명과 산업체인력 5만여명, 이들은 독일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반도체 산업의 총칭), IT, 생물공학, 나노전자공학, 태양광학, 바이오·의료 산업 등을 주도하고 있다. 드레스덴이 유럽의 실리콘밸리를 뜻하는 '실리콘 색스니'(Sillicon Saxony)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뷰 / Ferdinand Ruchay 드레스덴 경제진흥청장 
"산학연 네크워크, 성장 비결"

통독이후 드레스덴 경제성장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통독 전까지는 규제나 제한이 많아 발전이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서독은 성장속도가 빨랐는데 동독은 느렸다. 통독 후 서독이 주도한 산업분야를 뒤따라가는 것보다 우리는 다른 기회를 모색하려 노력했다. 드레스덴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산업이 강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드레스덴의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물론 여러 어려움도 뒤따랐다.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정치적인 문제들이 걸림돌이 됐다. 전쟁 전 드레스덴의 모든 재산은 작센주 소유였다. 통일 후 토지나 건물의 원 소유자를 찾아야 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또한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는 변혁과정에서 민간회사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투자자들이 무리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특정산업뿐만 아니라 산업전반이 골고루 성장하게된 비결은?

드레스덴 시정부가 전략적으로 결정을 한 것이 '드레스덴 부흥계획'이었다. 전통적인 산업기반이었던 반도체 산업뿐만아니라 의료기기와 관련된 라이프 사이언스, 바이오, 나노, 신소재 산업들을 육성하기 위해 클러스터 정책을 폈다.

드레스덴 클러스터 사업의 특징은 하나의 구획지에 모든 산업인프라가 집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체와 연구기관들을 집중시키고 관리하는 것인데 드레스덴에는 이러한 곳이 미나폴리스(반도체와 나노산업), 바이오폴리스, 매트(신소재)폴리스 총 3개의 지역이 있다.

물리적으로 집적화를 이루게 돼 산학연관의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강화될 수 있고 관리적, 산업지원적인 성과가 배가될 수 있다. 각 구역에는 담당 매니저가 있어서 산업애로사항이나 필요사항들을 경제 관료나 정치인들에게 바로 전달하고 정책화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기업과 우수인력 유치도 눈에 띈다.

우수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실례로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인 AMD의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본사에 찾아가 이전에 따른 사전조사부터 실질적인 인프라 구축까지 다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AMD는 드레스덴에서 이미 고용창출을 하고 있었지만 연구나 관리 인력까지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만 했다. 

조사 결과 상당수 고급인력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삶을 가장 중요하게 응답했다. 드레스덴은 국제학교를 설립하는 등 그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다.

물론 프라운호퍼나 막스플랑크등 세계의 연구소들이 이곳에 있다는 점과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그들이 이곳으로 이전하는데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

드레스덴 시의 산업적 목표는?

경제총괄 책임자로서 드레스덴 시를 성장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특히 드레스덴에는 히든챔피언이라 불리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 많다. 드레스덴 시가 이들을 지원해 산업을 더 강화할 것이다. 그 한 방법으로 다른 지역과의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원주와는 지난해 업무협약을 맺었는데 원주와 드레스덴이 글로벌 전략을 함께 추진해 더 역동적인 성장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드레스덴과 원주를 더 가까이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싶다. 독일은 통일을 통해서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한국도 통일이 되면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임을 확신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