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그럼 원주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였습니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국내·외 후발업체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있고,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원주를 추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시각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드레스덴의 사례는 원주가 옛날처럼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산·학·연·관이 활발히 협력할 때 원주도 드레스덴처럼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 맨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드레스덴 프라운호퍼 실험실 전경 ▷드레스덴 로쎈도르프에 위치한 헬름홀츠 센터(Helmholtz-Zentrum) 실험실 ▷보호 가스하에서 소재연구를 진행하는 막스플랑크 화학 소재연구소 . (사진제공: 드레스덴시)

구소련 체제가 무너지기 전 동유럽 국가들은 소재산업에 강한 면모를 내비쳤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그랬고 동독의 드레스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드레스덴은 반도체산업의 기술력이 높았다. 

통독이전에도 우수한 과학자들이 드레스덴에서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이는 통독이후 프라운호퍼나 막스플랑크 등 세계수준의 연구소를 유치하게 되면서 그 능력이 배가되었다. 세계적인 연구인력들이 드레스덴에 몰려들자 반도체산업을 중심으로 광학이나 다른 물리계통의 산업까지 동반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력의 바탕에는 드레스덴 공대에서 끊임없는 기초연구 성과물을 생산해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학에서는 기초과학에 힘썼고 프라운호퍼 등에서는 이를 토대로 응용과학에 매진했다.

대학과 연구소가 시장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기술적 수요를 충당했고 산업체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기술력을 자사 제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대학이나 국책연구소가 정부지원을 받아 개발한 상당수 결과물이 산업에 적용되지 못하고 연구성과로 끝나는 우리현실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업체들은 또한 바이오삭소니(Bio-Saxony)와 같은 협회를 설립하고 정보교류, 공동마케팅, 파이낸싱(financing) 지원 등의 사업 분야에 공조를 이루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 드레스덴 시는 이들이 효과적인 사업효과를 발휘 할 수 있도록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기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AMD나 인피니온과 같은 글로벌기업이 유럽 생산기지의 입지를 정할 때 다른 동유럽국가가 아닌 독일 드레스덴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가진 강력한 산·학·연·관 네트워크 경쟁력 때문이었다.

융합과학으로 첨단산업 이끌다. 드레스덴 공대

독일 5대 명문 공대 중 하나로 꼽히는 드레스덴 공대는 1828년 '작센 공업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1961년부터 공대중심의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으며 3만7천여명의 학생이 등록된 작센주 최대 규모의 대학교로 독일 10대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이 대학은 전자, 엔지니어링, 컴퓨터 과학, 사진광학, 엔진 설계, 교통 물류 등의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드레스덴도 원주처럼 바이오·의료산업에 관심이 많다. 드레스덴 공대 산하 의료이론연구센터(Medical Theory Center)는 해부학, 생리화학, 실험이론, 의료물리, 진단센서 및 진단연구 센터 등 12개의 연구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인력만 600명이 넘는데 학제간 융합은 물론 산업계와의 직접 접촉을 통해서 산업현장이 필요로 하는 기초과학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등 주요 연구소와 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드레스덴 공대 Richard Funk 교수는 "드레스덴 공대는 아직도 기초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 연구에서 파생된 결과가 응용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이러한 기술들이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기업들이나 정책 담당자가 인식해야 하며, 드레스덴 공대는 이를 대비해 특허사무소를 설립하고 지재권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가 하나의 특정한 감지기술을 개발했을 때 이것을 의료기기에 어떻게 접목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독일 기업들도 많이 어려워한다. 하지만 융합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드레스덴 공대가 그렇다고 산업에 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응용연구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다국적 항공기 생산업체인 에어버스 사는 드레스덴 공대를 방문해 자신들이 필요한 응용기술을 이 대학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맞춤형 기술개발의 산실 프라운호퍼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중소기업도 기술개발이나 생산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곳은 드물다.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까지 아우르는 연구기관이 필요한데 프라운호퍼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프라운호퍼는 기초연구에서 파생된 결과를 가공해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화시키는 응용기술연구기관이다. 드레스덴 프라운호퍼 IKTS(세라믹 기술 시스템) 연구소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세라믹에 기반을 둔 이차전지, 에너지저장시스템, 디스플레이, 의료진단 기술 등에 관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소형모형 제작 실험 등의 생산시스템을 통해 시제품이나 부품 등을 검증한 후 완전한 생산라인을 구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철 ICE의 자동차축 검사시스템도 베를린에서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드레스덴 프라운호퍼 IKTS 연구소가 개발한 것이다.

Joerg Opitz 프라운호퍼 IKTS 부소장은 "중소기업이 기본기술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이를 응용할 연구인력이나 생산시스템, 검증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뒤따른다"며 "기업들은 자체자본을 들여 이를 해결할지 또는 프라운호퍼와 협력을 통해 해결할지를 결정해야 할텐데 프라운호퍼는 훨씬 더 낮은 기회비용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비용 자체도 독일정부를 통해서 상당부분 지원받을 수 있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을 덜 수 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산업계와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 것은 구조적인 이유가 크다. 프라운호퍼연구소는 평균 25%의 운영비를 연방정부와 주정부로부터, 40% 정도는 EU나 독일 연구지원 재단으로부터 충당한다.

하지만 35%는 기업수탁 과제를 수행해 운영비를 마련하는데 이 비율이 많고 적음에 따라 정부지원 비율도 결정된다. 기업과의 연구 활동이 적을 경우 운영비 지원이 줄어들어 연구소를 폐지해야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기업수탁 과제를 따내기 위해 독일 내 66개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물론 대내외적으로 다른 유수의 연구소들과 치열한 경쟁을 수행하고 있다.

회원기업 이익극대화 바이오삭소니 

작센주 정부가 2000년대 전후부터 핵심 기간산업으로 바이오산업에 투자를 하게 되면서 지역의 바이오산업은 활기를 띠게 된다. 당시 바이오 산업체들은 주정부나 시정부로부터 효율적인 사업 지원을 받고 업체 간 교류활동을 증진시키기 위해 에이전시를 설치하게 된다.

이러한 에이전시 활동에 힘입어 작센주 바이오 산업계는 2009년 비영리 협회를 창설하는데 이것이 바이오삭소니(Bio-Saxony)이다.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에 한 개씩 법인을 두고 있는 바이오삭소니는 111개 협회 회원들의 교육, 해외전시회 지원, 기술교류, 파이낸싱 등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회원 중에는 작센주 내의 기업뿐만 아니라 영국, 폴란드, 미국에 본거지를 둔 기업들도 있다. 

이들은 회원업체간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중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모 글로벌기업이 바이오삭소니의 문을 두드리며 바이오산업에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바이오삭소니는 몇 년 전부터 '과학을 산업으로'라는 명제를 설정하고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이오넥션(bionection) 이벤트이다. 주요 연구기관이 산업화에 초점을 둔 연구테마를 발표하면, 회원 기업들은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제품화할 수 있을지 연구기관과 논의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교류의 장을 만들어서 산업은 물론 기업들의 경쟁력을 도모하고 있다. Andre Hofmann 바이오삭소니 대표이사는 "바이오삭소니 설립 후 작센주를 비롯해 연방정부 등이 7억유로(9천300여억원)을 투자하면서 지역 바이오와 의료산업이 2배 이상 증가했다"며 "바이오삭소니는 독일 내에서 순위 권에 드는 산업협회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중이고, 원주를 비롯한 글로벌 협력관계를 강화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기술 개발 집중해야"
 인터뷰:한태영 프라운호퍼 아시아담당 수석매니저·연구원 

프라운호퍼에서 역할은?

▲ 프라운호퍼 아시아담당 수석매니저 겸 연구원인 한태영 박사.

프라운호퍼 아시아담당 수석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연구소와 기관, 기업체, 대학교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사업화를 도모한다. 단순히 프라운호퍼와 파트너 대상 기관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공통사업에 대한 마스터플랜까지 계획해 제시한다. 

프라운호퍼 내 아시아계 직원은 제가 유일해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과 사업화를 모색 중이다. 연구원으로서도 활동 중인데 차세대 초음파 기구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드레스덴이 첨단산업도시로 성장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산업이 발전하려면 반드시 기술이 있어야 한다. 업체가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력을 읽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술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었을 때 '대박' 날 것이라는 영감이 떠오른다면 그 기술을 구현해 줄 연구소를 찾게 될 것이다. 

드레스덴에는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는 연구소를 기업들이 고를 수 있다. 유명 아이스크림업체 배스킨라빈스31처럼 기술소비자가 자신의 입맛대로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건, 어떤 기술이건 관련 산업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원주와의 협력관계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저희 연구소가 비파괴분야와 관련해 중점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의료기기 쪽으로도 충분히 여력이 있다고 판단해 사업파트너를 물색했고 한국이 관련 산업에 의지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한국에 대한 산업조사를 했는데 의료기기 산업과 협력관계를 모색한다면 타 도시보다 원주가 제격일 것 같아 관련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문막 동화리에 소재한 아이센스가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인데, 그것이 확정되면 프라운호퍼와 파트너십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계절학기마다 한 과목씩 강의하고 있다. 드레스덴에서 진행되는 융합과학 분야라든가 또 이러한 것이 어떻게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기술로 접목될 수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드레스덴을 통해 원주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원주의료기기 산업을 보면 몇 해 전부터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단 첨단기술이 눈에 띄지 않는다. 완전 최첨단기술은 제외하더라도 저것은 고급기술로 만든 의료기기다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드물다.

원주의료기기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조그만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생활의료기기 제품이 발전해서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제품을 중국에서 대량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있고 독일 미국 등의 의료기기 제품과는 기술력이 벌어지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3~4년 후면 중국이 원주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체적으로 해결을 못하면 드레스덴이 됐건 어디가 됐건 손을 잡고 산업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힘든 상황인 듯 싶다. 드레스덴 의료연구센터 Richard Funk 교수가 융합과 협력을 강조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듯이 원주도 그래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기기 산업육성에 대한 의지를 키우고 산·학·연·관 네크워크를 강화한다면 원주가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