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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19)문막읍 동화2리 동화골

대대로 이어져온 자연환경 그대로 보존 장시우 시민기자l승인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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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막에서 원주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 길옆에 '벽계수 이종숙의 묘'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황진이가 시를 지어 유혹했던 그 벽계수일까? 그 벽계수라면 왕실의 종중이었던 그의 묘가 왜 원주에 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에 언제 시간이 나면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지나치곤 했는데…이번 주 마을탐구는 벽계수 이종숙의 묘가 있는 동화골을 찾았다.

동화골은 문막읍에서 북동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동화2리의 별칭이다. 동화2리는 3개 반이 있는데 1반은 좁은목, 음수골,수반 등 3개 마을, 2반은 호적골, 3반은 동화골이라 부른다. 동화2리 이장수 이장(52)에 따르면 동화골은 한때 전주(全州) 이(李)씨 집성촌이었는데 하나둘 마을을 떠나면서 지금은 전주 이씨, 김해 김씨, 경주 김씨 등 60여 가구 120여명이 주로 소규모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처음 마을을 찾은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마을회관에 나와 있던 이장수 이장과 이석규(82)씨, 김장열 노인회장(77), 박상배(80), 장현철(77), 김복동(70), 김충렬(69) 씨 등 마을 원로들로 부터 동화골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이 마을에는 이 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중 문막우체국장을 지낸바 있는 이석규 씨가 가장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킨 인물이다.

"옛날에는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어요.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도 모여 살았지만 전주 이씨가 훨씬 많았지요" 동화골에 전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뤄 살게 된 것은 세종대왕 아들인 영해군파 5세손 선무랑 원경공이 임진왜란 때 건등리 너그네로 피난 왔다가 조부인 벽계도정 종숙의 유언에 따라 상경하지 않고 유훈을 받들며 조용히 살면서부터라고 한다. 벽계도정은 중종 때 조광조의 제자로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를 당하면서 자손에게 '불취관문(不就官門) 불입당쟁(不入黨爭)'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후손들이 지금의 동화골 이씨 종중과 관천 종중 집성촌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도시로 떠나 지금은 11가구만 남았고 외부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지금은 토착민 비율이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이들 중 70세 이상 노인이 마을 주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은 소농이다.

   
 
  ▲ 벽계수 이종숙의 묘.  
 
벽계수 이종숙의 묘 이곳에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동화골에는 벽계수 이종숙의 묘가 있다.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의 벽계수로  알려진 그 인물이다. 그의 묘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무랑공의 후손들이 35년 전 서울 상도동에 있던 벽계도정의 묘와 부인 문성령의 묘를 동화골 뒷산 주봉에 있는 선무랑공의 묘 근처로 이장한 것이라고 한다.

이장수 이장의 안내로 찾은 벽계수 이종숙의 묘는 진입로가 별도로 조성돼 있지 않은데다 웃자란 수풀과 옥수수밭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묘는 비석과 문인석으로 아담하게 조성돼 있었다. 이장수 이장은 "묘역을 잘 정비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초라하고 관리도 잘 되지 않아 조상들에게 송구한 마음"이라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동화사 절터 흔적 곳곳에

   
 
  동화골 마을은 한때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전주 이씨가 많이 살고 있다. 사진은 벽계수 이종숙의 묘 인근에 세워져 있는 묘원 안내석.  
 

동화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또 하나는 동화사(桐華寺) 절터이다. 동화사는 문헌이나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그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흔적을 보면 상당한 규모였을 것이라는 게 마을 노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폐사지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고즈넉하고 애잔한 느낌에 끌려 동화사 절터를 찾아가기로 했다. 동화사지로 가는 길은 상수원 보호를 위해 출입을 통제한 곳이라 수풀이 우거져 있고 계곡 주변 바위들은 이끼가 뒤덮고 있어 무척 미끄러웠다. 깊은 계곡에서나 들을법한 물소리를 들으며 20분 남짓 녹녹치 않은 길을 올라가다 보면 간간히 화전민이 숯을 구워 생활했던 숯가마 터가 남아 있다. 심산유곡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각양각색 버섯들도 눈길을 끌었다. 길을 안내해준 이장수 이장과 이석규 씨에 따르면 10~20년전만 해도 이 산에서  제법 많은 송이버섯이 채취됐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절터에 이르자 잡초 틈에 흩어져 있는 기와조각과 얼핏 보기에도 견고해 보이는 축대가 눈에 들어왔다. 동화사는 창건과 폐사 연도가 불분명하지만 대단히 규모가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뒷산 골짜기 부도골에는 명승에서만 나온다는 사리를 안치한 부도탑도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 단종 폐위시 생육신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 이 절에 유숙하면서 지었다는 시가 매월당 시집 10권에 실려 있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명봉산 험준한 골짜기에 절을 지으면서 봉황(鳳凰)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는 고설에 따라 동화사라 짓고 절 앞에는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자 절을 뒤덮어버리는 지경에 이르자 주지승이 나무를 베어버렸는데 제일 큰 오동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찰나 봉황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날개 소리가 메아리치면서 피 같은 붉은 물이 흘렀고 이에 놀란 스님들이 공포에 떨면서 절을 떠났고 주지승 홀로 절을 지켰으나 설상가상 빈대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빈대에 시달린 주지승마저 절을 떠났고 절은 쇠락의 길을 걷다가 완전히 폐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오동나무를 베어 명봉산(鳴鳳山) 정기가 빠져 나가는 바람에 절이 망했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 동화골마을 뒤로 펼쳐져 있는 명봉산 계곡. 마을 사람들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잘 관리해 지금도 계곡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대대로 유지해 온 자연환경

동화골의 특징 중 하나는 아직까지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지켜왔다는 것이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한 가족처럼 생활해 오다보니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한마음으로 막을 수 있었다. 이들이 농사를 짓고 식수로 사용하는 물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동화골 사람들은 지금도 계곡물을 식수로 쓴다. 수질검사 결과도 지하수 보다 깨끗했다고 한다.

그 물을 지켜내기 위해 외부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마을사람들 스스로도 계곡 출입을 삼갔다. 뭔가를 지킨다는 것은 수고와 힘겨움을 감수해야한다. 동화골 사람들은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식당 등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고 자랑했다. 이로 인한 불편함과 수고는 기꺼이 감수했다. 

그렇게 지켜왔던 동화골 계곡과 명봉산에 수목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원주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5년 후에는 수목원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는 마을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있을 것 같은데 이 마을 사람들은 기대 못지않게 걱정도 크다. 수목원이 들어서면 사람들이 많이 출입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환경이 오염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공장 등 산업시설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지만 마을 사람 대부분은 썩 내키지 않아요. 수목원이 들어온다고 해서 특별히 좋아질 게 없잖아요. 오히려 환경이 오염돼 그동안 식수로 사용해 온 계곡물을 먹지 못하게 될까 걱정 됩니다" 이장수 이장의 말이다. 이석규 씨도 거들었다. "우리 마을 노인들은 대부분 오래 살아요. 오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건강해요. 아마 좋은 물을 먹고 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수목원이 들어서 물을 망가트릴까 걱정돼요"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서 수목원 조성을 받아들인 것은 다른 시설보다는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주민들의 바람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자연친화형 수목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소박한 바람도 있다. 마을회관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현재는 주민 김상배(80) 씨 소유의 창고건물을 노인회관 겸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막읍과 원주를 잇는 국도에 접해있으면서도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을 수백년째 이어오고 있는 동화골 사람들. 취재를 마치고 마을을 빠져 나오면서 이들의 소박한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장시우 시민기자


장시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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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막읍 동화2리 동화골 마을은 문막읍에서 원주방향으로 진행하다 문막읍을 벗어나면서 오른쪽에 펼쳐져 있는 마을이다.

동화골 마을은 한때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전주 이씨가 많이 살고 있다. 사진은 벽계수 이종숙의 묘 인근에 세워져 있는 묘원 안내석.

동화골마을 뒤로 펼쳐져 있는 명봉산 계곡. 마을 사람들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잘 관리해 지금도 계곡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벽계수 이종숙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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