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개최한 제24회 대안리 노인잔치. 지역 노인과 주민 등 175명을 초청, 볼거리와 점심식사를 제공했다

원주는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는 도농 복합도시이다. 그러나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빠른 속도로 도시화 되고 있다. 또한 교통망이 크게 개선되면서 인구 유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도시발전과 인구증가는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존재한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지역공동체 문화의 실종이다. 지역공동체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원주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다행히 아직은 지역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독자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 이병태 갈거리사랑촌 원장(좌).   ▲소식지 '갈거리이야기' 편집회의. 실무자들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다.(우)

갈거리사랑촌, 주민과의 만남 

흥업면 대안저수지 아래 옛 지명 '갈거리 마을'에 위치한 갈거리사랑촌(원장: 이병태)의 역사는 지난 25년 전 곽병은 명예원장이 의사로 일하며 모아둔 돈으로 원주군 흥업면 대안리 1409번지 외 8필지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그 곳에 갈 곳 없는 장애인과 노인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자 터를 닦아 1991년 8월 31일, 미인가 복합공동체 시설로 개원했다. 

갈거리사랑촌 가까이에는 민가가 없다. 그러나 건너편 마을에는 대안3리 주민들이 살고 있다. 처음 갈거리사랑촌을 만들면서 대부분의 사회복지시설이 그러하듯 주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갈거리사랑촌은 이사를 들어온 이웃처럼 주민들을 먼저 찾아갔고, 시설 거주자 뿐 아니라 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복지시설이 되고자 하는 뜻을 전달했다. 이듬해 여름 제1회 대안리 노인잔치를 열어 마을 노인을 비롯한 주민들을 초대했고, 흥업면 산골 대안리 마을에는 '동네잔치'가 생겨났다. 

현재 갈거리사랑촌은 노인시설을 시내지역 노인공동시설과 통합하고, 장애인시설 베닉노의 집만을 운영해 지적장애인 29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지역 노인들이 드나든다.

거주 장애인들과 함께 문화 프로그램 활동을 하고, 점심도 먹고, 담소를 나누다 돌아간다. 마을 경로당처럼 말이다. 그렇게 갈거리사랑촌은 고립된 장애인 시설이 아닌 마을 대소사를 함께하는 '이웃'이자 '사랑방'으로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낮 동안 어르신' 

이병태 갈거리사랑촌 원장은 지역사회통합프로그램인 '낮 동안 어르신'을 '사업'이라 표현하는 게 거창하다고 설명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집에만 계시면 무료하니까 오셔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도 같이 하고, 식사도 하시고, 대화 나누면서 놀다 가시는 거죠"라고 말하며 '공생'이라 설명했다. 

갈거리사랑촌은 과거 지역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욕구조사를 진행했다. 대안2·3리에는 70세 이상 된 노인들이 많아 대부분 의료 및 건강 관련 복지서비스를 원했다.

현재 갈거리사랑촌에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경로당에 가는 것도 힘든 노인 10여명이 평일 낮 시간 매일 방문한다. 갈거리사랑촌은 노인들을 위해 차량을 운행하고, 병원이나 약국을 갈 때 차량을 지원해 동행하기도 한다.

특히 독거노인에게는 꼭 필요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갈거리사랑촌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의료 봉사를 나오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진료를 받기도 한다. 

갈거리사랑촌을 찾는 봉사자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마을 노인들은 서예, 한글교실, 이야기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거주 장애인들과 함께 참여한다. 마을주민 유화량 씨는 자원봉사로 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장애인들과 노인들의 수준에 맞춘 요가로 신체활동을 돕고 있다. 또한 매년 나들이, 성지순례 등 외부활동에도 마을 노인들이 함께 가고, 생일을 맞은 노인이 있을 때는 파티를 열어 축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듯 노인들에게 갈거리사랑촌은 차량을 운행하는 경로당이자, 마을 복지관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거주 지적장애인들은 노인들과 함께 어울리면 사회성을 키워갈 수 있어 갈거리사랑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소식지 '대안리 마을이야기' 

갈거리사랑촌은 시설의 이야기를 후원자들과 봉사자를 비롯한 지역사회에 전하고자 개원 이듬해인 지난 1991년 2월 소식지 '갈거리이야기' 창간호를 발간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는 소식지 뒤 3~4페이지를 할애해 '대안리 마을이야기'를 함께 발행하고 있다.

한권의 소식지 안에 갈거리사랑촌 이야기와 대안리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덕분에 갈거리사랑촌 소식지를 받는 사람들은 대안리 마을 소식도 알 수 있고, 대안리 주민들도 갈거리사랑촌 돌아가는 얘기를 잘 알고 있다. 마을소식지가 있어 갈거리사랑촌과 마을이 더욱 친밀하고, 주민 간 소통을 통해 공동체문화를 이어간다. 

분기별로 발행하는 마을소식지에는 '마을이슈'와 '대안리 이웃이야기' 코너가 있다. 마을이슈에는 주로 소소한 동네소식이 담기지만 언제나 밝은 소식만 실리는 것은 아니다.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시설 입주를 반대하는 목소리, 주민들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것 등 민감한 얘기들도 다뤄진다.

'마을동정'은 대안2리 안에서도 검산·새말·은행정·해삼터, 대안3리 술미·대수리·갈거리 등 마을별 얘기를 꼼꼼히 다룬다. 경조사를 비롯해 이사를 나간 주민과 새로운 주민, 마을 자생단체 소식, 동네 마루를 이용하는 산악자전거 회원들 얘기까지 모두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소식지를 만드는 일에는 갈거리사랑촌 실무자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다. 대안2리 김남흥 이장과 한만준 노인회장, 대안3리 최돈업 이장과 정문선 노인회장이 마을 소식을 전달하고 주민을 섭외해 줄 뿐 아니라 편집회의에도 참여한다.

모아진 소식과 사진들을 알맞게 편집해 소식지를 완성하는 일은 지역콘텐츠 개발 회사 라이프디자인컴퍼니 '웜홀'의 나무선 대표가 봉사한다. 나무선 대표는 얼마 전 회사와 자택을 한 데 모아 대안리로 들어온 주민이다.

'낮 동안 어르신' 요가강사 유화량 씨와 부부지간으로 함께 마을 소식지 발행을 돕고 있다. 마을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쓰는 일은 갈거리사랑촌 베닉노의 집 생활재활교사 심수보 씨가 담당한다. 대안리 마을 기자나 다름없다. 

최돈업 대안3리 이장은 "우리 대안리에 갈거리사랑촌이 들어와 처음에는 주민들이 걱정도 했었는데 모두 이해하게 됐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이 화합된 분위기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며 "마을 어르신들을 차로 모셔 즐거운 일상을 보내실 수 있게 해주셔서 어른신들게 큰 위안이 되고 주민들도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식지를 통해 주민들에게 알릴 소식도 전할 수 있고, 마을 농산물 등도 소개할 수 있어 농가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미희 기자  mhhan@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