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공에서 본 매지농악전수관 일대. 이곳은 정월대보름 달맞이축제나 김장축제가 열리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원주는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는 도농 복합도시이다. 그러나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빠른 속도로 도시화 되고 있다. 도시발전과 인구증가는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존재한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지역공동체 문화의 실종이다. 지역공동체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원주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본지는 지역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흥업면 매지3리 회촌마을은 37세대가 살고 있다. 농촌마을 답게 마을 대소사가 생기면 서로 한 마음이 되어 행사를 치른다. 1월 정월대보름, 5월 단오, 7월 옥수수축제, 10월 김장축제가 대표적이다.

정월대보름에는 마을의 안녕과 개개인의 소망을 담아 달집을 태우고, 단오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에 맞는 주민을 선정해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주 생산작물인 옥수수를 소재로 축제를 열어 농가소득을 올리고, 전체 부녀자가 달려들어 수천포기 김장축제도 준비한다.

주민 모두가 공동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회촌마을은 마을공동체 정신은 물론, 매지농악의 명맥도 유지하고 있다. 

공동체 중심엔 농악 

회촌은 농악이 유명하다. 수백년 전부터 농악이 전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매지농악'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전승되고 있다. 매지농악보존회장인 강성태(74) 대동계 회장은 2005년 강원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강 회장은 "옛날엔 농악대 깃발이 서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마을 전체가 한바탕 (농악)판이 벌어졌다"며 "주민 중 농악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풍물대회가 열리면 대형버스 서너대를 대절해 참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농악은 농촌에서 집단노동이나 명절 때 흥을 돋기 위해 연주되던 전통 민속악이다. 농사일의 고됨을 잊고자, 아니면 추석 같은 명절에 풍년을 감사하면서 꽹가리, 장구, 징 소리가 울려퍼졌다.

농악 하나로 대동단결 했고, 농악대 깃발아래 모두가 한마음을 이뤘다. 강 회장은 "옛날 사람들은 농악놀이 자체를 마을의 수호신처럼 여겼다"며 "군대로 말하자면 령(令)이 서 있어서 일관된 통솔이 가능했고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농악의 흥겨움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래서 회촌마을엔 궂은 일이 있거나 공동의 힘을 필요로 할 때 농악을 찾았다.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나 단오 때는 매지농악보존회가 판을 벌려 그 의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지금은 70대 이상 고령자가 많아 예전처럼 농악놀이가 활성화 되진 않고 있다. 하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 마을을 하나로 모았던 회촌 매지농악의 수호신은 지금도 회촌에서 활동 중이다. 

공동부역으로 김장축제 준비 

매년 10월 회촌마을에선 김장축제가 열린다. 축제 일주일 전 부녀회원들은 회촌마을 농가맛집 토요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외지인 몇몇 세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축제를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수천포기 배추를 씻고 다듬으며, 양념 속을 만들면서 김장축제를 준비한다. 공재은(45) 매지1리 반장은 "회촌의 모든 행사가 공동체로 진행되다 보니 조그만 행사도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부녀자들은 김장준비에 여념이 없고 남자들은 배추를 나르는 등 힘쓰는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김장축제에는 통상 500여명의 참가자들로 성황을 이룬다. 주민들은 손님들에게 맛있게 김장김치를 만드는 법을 전수하고, 담근 김치를 토굴에 저장하는 의식도 같이 한다. 주민이 직접 재배하고 만든 것이라 소비자들의 신뢰가 대단하다.

중국산 배추와 고춧가로로 만든 시중김치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매년 축제마다 구매주문이 폭주해 가을 배추가 동나고 있다. 

옛 멋 살린 달맞이축제와 단오축제 

1월 15일 정월대보름 달맞이축제에는 전통민속놀이, 대동놀이, 달집태우기 등 아이들과 함께 대보름 풍습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전통공연, 먹거리마당도 함께 준비돼 축제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주민과 관람객이 쓴 소원지를 새끼줄에 엮어 달집을 태우는 장면은 회촌에서 느낄 수 있는 장관 중 하나이다. 

단오 날 회촌의 풍경도 흥미롭다. 회촌마을은 단오에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지금까지도 전승하고 있다. 대동계 회장이 마을주민 중 가장 기운이 건강한 남자를 유사로 정해 제(祭)를 지내고 있다.

보통 생기와 복덕을 계산해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정한다. 강성태 회장은 "유사가 되면 몸과 마음가짐을 가지런히 해야 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해야 한다"며 "단오 제사를 통해 마을의 공통된 바람을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고 그나마도 남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때문에 생기복덕에 맞지 않아도 남자면 유사로 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을 전체의 안녕과 복을 비는 주민들의 정성은 예나지금이나 여전하다.  

매지농악보존회, '축제의 멋' 더해

매지농악보존회 또한 축제에 멋을 더하고 있다. 보존회에는 매지농악을 이수한 '한국전통예술단 아울'의 단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농악을 통해 공동체 삶을 이뤄가는 회촌 고유의 정서를 선보인다. 축제마다 매지농악을 공연해 축제를 홍보하고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회촌의 다양한 축제가 단순히 체험과 판매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멋을 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강주석 한국전통예술단 아울 대표는"매지농악을 복원하고 전승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주민 소득을 올리는 일도 중요하다"며 "매지농악보존회가 축제 기획을 맡아 외지인들이 회촌을 찾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매지농악보존회는 2011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생생문화제 사업에 선정돼 회촌마을 정월대보름·단오·옥수수·김장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인구 늘리기는 과제 

회촌마을에는 관광자원이 많다. 토지문화관을 비롯해 매지임도를 거쳐 회촌마을입구까지 이어지는 원주굽이길 13코스, 매지농악보존회, 회촌마을 민속체험관, 농가맛집 토요 등이 대표적이다. 2008년에는 문화관광부 문화·역사마을 가꾸기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은 적고 고령화는 지속돼 마을 활력소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축제를 통해 시민들이 회촌을 찾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더 나아가 원주시민이 회촌에 정착하는 모습이 절실한 상황이다.

강 회장은 "과거에는 주민 모두가 단합하고, 화합하는 모습이 자랑거리였다"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노력이 뒷받침돼 회촌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