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가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제작한 도시생태현황(비오톱)지도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행정으로 인해 세금 9억원 및 5년여에 걸쳐 투입된 행정력이 공중분해 된 셈이다.

원주시가 비오톱지도 제작에 착수한 건 지난 2007년 12월이었다. 당시 착수보고회에서 원주시는 “자연생태계 보호 및 관리방안을 위한 체계적인 토대를 마련하고자 비오톱지도를 제작한다”고 사업 목적을 밝혔다. 이때부터 2012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원주 전역을 대상으로 생태조사가 실시됐으며, 사업비는 약 9억원이 투입됐다.

비오톱지도는 도시 생태자원 현황을 파악해 전체 도시공간을 유형화 하고, 구분된 공간에 생태가치를 등급화 해 도면화 했다. 반드시 보존이 필요한 지역은 Ⅰ등급,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은 Ⅱ등급 등으로 등급을 매긴 것이다. 보존지역과 개발가능지역을 구분해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비오톱지도를 제작한 뒤 이를 시민들에게 열람 공고하면서 불거졌다. Ⅰ등급 토지는 비오톱지도와 무관하게 개발이 불가능하지만 Ⅱ등급 토지의 경우 개발이 가능한 데도 비오톱지도로 인해 족쇄가 채워졌다며 민원이 빗발친 것이다. Ⅱ등급이 전체 필지의 41%를 차지한 이유도 있었다. 이에 원주시는 Ⅱ등급 필지를 축소하는 한편 Ⅱ등급이더라도 개발행위면적이 1천650㎡ 이상인 경우만 심의를 받도록 완화했으나 지가 하락을 우려한 민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또한 환경보존과 개발을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게 제기됐다. 심지어 원주시의회 내에서도 찬성파와 반대파가 갈리는 등 논쟁으로 비화되는 상황이 연출되자 원주시는 비오톱지도 사업을 중단한 뒤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을 계획할 당시 원주시가 이 같은 민원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면밀한 검토 및 여론수렴 없이 강행한 것이다. 또한 막대한 세금 및 행정력을 낭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공무원은 없었다. 특히 생태계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비오톱지도를 계속 방치했다가는 그야말로 무용지물로 변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주시 관계자는 “워낙 민원이 거셌던 데다 비오톱지도 시행이 강제규정은 아니어서 여론의 추이를 보고 있다”면서 “비오톱지도 시행이 법제화 되면 일부 보완하는 선에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