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는 고 박경리 선생으로 대표되는 토지문학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등을 통한 시민독서운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사진은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백일장.

기획취재 '문학으로 꿈꾸는 창의도시 원주'를 6회에 걸쳐 연속 게재합니다. 원주투데이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자문을 얻어 공예와 음식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된 전주시와 이천시 등 국내 사례를 취재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와 영국의 노르위치, 아일랜드 더블린 등 대표적인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에서 그들이 지역의 문화자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성과와 비전은 무엇인지 취재했습니다.

원주시가 2019년을 목표로 문학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을 추진중인 가운데 창의도시로 가기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또 지속가능한 원주의 미래는 어쩐 모습이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 싣는 순서

1. 창의도시로 가는 길
2. 공예 창의도시 이천
3. 음식 창의도시 전주
4. 문호들의 고향 더블린
5. 출판산업의 중심 노르위치
6. 문학이 숨 쉬는 땅 에든버러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탄생

창의도시(Creative Cities)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개념이다.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제조업의 쇠락, 대량 실업 등의 문제를 겪고 있던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찾아나섰다.

국가 주도의 개발이 아니라, 문화를 근간으로 시민 참여를 통한 도시 발전과 시민의 삶 개선을 추구하는 창의도시가 주목을 받게된 배경이다. 문화와 창의성에 뿌리를 둔 새로운 도시발전 모델로 거론돼 온 창의도시는 특히 지속가능발전에서 문화의 기여를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경험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올해 출범 12년째를 맞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목표는 '창의산업 육성을 통한 문화다양성의 가치 실현'이다. 문화적 자산이나 활동을 부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인력 양성이나 산업기반 조성, 도시 간 협력체제 구축까지 강조한다.

창의도시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창의성에 기반한 창의 산업의 존재 여부이다. 창의산업은 문화유산과 예술, 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및 유통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하는데, 높은 부가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세계 32개국 69개 도시 가입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문학, 영화, 음악, 공예와 민속예술, 디자인, 미디어 아트, 음식 등 7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2015년 1월 현재 전세계 32개국 69개 도시가 가입돼 있고, 이중 원주시가 가입을 추진중인 문학분야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등 11개 도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서울(디자인)과 이천(공예), 2012년 전주(음식)가 가입됐으며, 지난해 부산(영화)과 광주(미디어 아트)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경남 통영은 윤이상 국제음악제를 기반으로 음악 분야 가입을 발 빠르게 추진중이다. 원주가 가입을 추진중인 문학분야는 국내는 물론, 아직까지 아시아권에서 가입한 국가가 없다. 원주시가 계획하는 2019년 가입이 실현될 경우,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효과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속한 도시들은 유·무형의 혜택을 누린다. 직접적으로는 사용 절차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네스코의 명칭과 로고를 사용할 수 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들은 홍보자료와 주최 행사 등 다양한 채널에서 유네스코라는 브랜드를 활용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높이고 관광수입도 올리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국제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타 도시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지역의 문화산업을 성장시키고 문화자산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에딘버러는 폴란드 쿠르쿠프 등 11개 도시와 아이슬랜드 레이캬빅은 16개국 17개 도시와 다양한 국제교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은미 이천시 창의도시교류팀장은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후 일본 가나자와 등 아시아권은 물론, 남미와 유럽 등지에서도 먼저 교류를 희망하는 도시들이 늘고 있다"며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가 되려면

원주보다 앞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한 도시의 실무자들은 '도시의 특색에 따른 독창적인 발전전략'을 주문한다. 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도시의 특화 된 산업이나 정책 등을 부각하면서 창의도시 가입 이후까지 내다보는 중장기적 비전과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은 국내외적으로 통상 2~3년 이상의 노력과 헌신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창의도시 가입을 검토하는 단계부터 신청서 작성과 수정, 심사, 최종 승인에 이르는 긴 과정을 통과해야만 정식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위를 얻게 된다.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을 희망하는 도시는 먼저 문화적 전통, 문화 분야의 시설이나 산업 기반, 교육 및 연구 활동, 인적자원 등과 같이 도시가 보유한 문화적 자산을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네스코는 후보 도시들에게 유네스코 및 국가위원회와의 원활한 소통을 담당할 연락책임자를 둘 것을 요구한다.

또 공공과 민간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운영팀을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커뮤니케이션팀 서지형 담당관은 "창의도시 가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10~20인 규모의 운영위원회를 꾸려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경리와 그림책, 그리고 한 책 읽기 운동

원주는 운곡 원천석 선생과 손곡 이달, 윤지당유고를 남긴 조선시대 여성성리학자 임윤지당, 조선시대 최초 여류시단인 '삼호정시단'을 이끈 김금원과 박죽서의 고향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과 김지하 시인, 대한민국 대표 작사가 박건호 선생, 도종환 시인, 오탁번 교수, 김충열 교수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해원과 상생으로 상징되는 치악산 꿩 설화가 전래되는 지역으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협동조합 운동으로 대표되는 생명문학이 태동한 장소이기도 하다.

최초로 민간 레지던시 사업을 시작한 토지문화관과 박경리 선생의 자택을 보존한 박경리문학공원이 있고, 국내 유일의 고판화 전문 박물관인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과 한지테마파크, 뮤지엄 산, 중천철학도서관 등 문학 및 기록관련 시설과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민간주도로 추진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10년간 200여명의 그림책 전문인력 양성으로 시작된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가 활동하고 있는 등 시민 참여형 독서문화가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문학으로 꿈꾸는 창의도시 원주

원주시는 이 같은 지역의 문학적, 창의적 자산을 기반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문학) 네트워크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입을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제도시와 활발한 문화 교류를 통해 창의산업 발전 및 관광 시너지효과 등 다양한 문화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지역의 향토문화 유산과 고 박경리 선생으로 대표되는 토지문학,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등을 통한 시민독서운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특화된 그림책 문화도시 연계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원주시는 지난해 2월 유네스코 창의도시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10월 원주현황 분석 및 추진전략 학술용역을 실시했다.

올해 4월에는 '소설 토지와 연계한 그림책 제작사업'으로 국토교통부 창조지역 공모사업에 선정돼 2억4천여만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또 5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문화특화지역 조성 사업에 '그림책으로 특화된 문화도시사업'이 선정돼 내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국비 15억원을 포함, 총사업비 37억5천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밖에도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도시사업에도 응모해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문화예술과 내에 전담조직을 신설,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입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했다.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이 중심인 문화도시사업과 창조지역 공모사업으로 추진 중인 박경리문학 육성지원사업,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범 시민 문화운동 등을 추진방향으로 결정했으며 민간 NGO가 협력을 주도하는 창의도시 추진협의체를 꾸려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창의도시로 가기위한 원주의 과제

지난 5월 원주문화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미옥 전 이천시 창의도시교류팀 주무관은 "창의도시는 해당 분야와 관련된 지역 구성원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하고 그래야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역 구성원의 합의와 협력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취재를 통해 만난 각 도시 실무자들도 창의도시는 특정인이나 특정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업이 아니라고 했다.

"단순히 창의도시라는 도시브랜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지속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그 안에서 제시된 아이디어로 추진 방향을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도시, 안전도시 등 그 동안 원주시가 추진한 도시브랜드 사업들이 있지만 실제 시민들의 체감도가 낮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자칫 창의도시라는 브랜드만 내세워 전시성, 과시용에 치우친다면, 창의도시로 지정되더라도 실패한 전례로 남을 수 있다.

지역의 문화자산을 묶어내고 연계할 수 있는 협의체 및 콘트롤타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관련 인사는 물론, 동아리와 전문단체, 기관 등을 연계하고 시너지효과를 풀어낼 수 있어야한다.

도시 이미지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국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문학 창의도시가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귀배 문화커뮤니케이션팀장은 "우리가 음식하면 전주를 떠올리고, 도자기는 이천을 먼저 거론하는 것처럼 앞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가입한 국내 도시들을 보면 이미 그 분야의 대표도시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과연 현 시점에서 문학도시로 원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냉정하게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우선 국내에서부터 문학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김 팀장은 "원주는 충분한 문학적 자산을 갖고있는 만큼 지역의 자산을 잘 엮어내고 지역 구성원들의 동력이 뒷받침 될 수 있는 추진전략을 수립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