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떠난 공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신

학교는 시골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교육·문화적 여건이 도심지역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지는 시골마을에서 학교는 학생과 주민들 입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며, 아이들의 밝은 웃음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로 빚어진 탈 농촌현상,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 등의 문제들이 가속화돼 문을 닫는 학교가 생겨나게 됐다. 한 때 수십·수백 명의 학생들로 웃음이 넘쳐나던 학교는 발길이 끊긴 채 건물만 덩그러니 남는다. 졸지에 학교를 잃은 학생들은 인근의 적정규모 학교로 원치 않는 전학을 해야 하는 설움을 겪어야 하고, 학창시절 추억을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가던 졸업생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전국의 폐교가 3천 곳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원주는 23곳이 문을 닫았다. 보통 면소재지에 위치한 학교나 비교적 인구가 많은 지역의 학교들이 살아남은 실정이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문 닫을 학교들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점차 폐교가 늘어남에 따라 폐교활용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폐교된 학교들은 보통 철거되지 않고 지역주민이나 사업자 등에 임대 또는 매각돼 교육·문화·체험·복리시설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침체된 농촌지역이 활기를 되찾는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원주지역 폐교 사례를 소개하면서 폐교 활성화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
문화예술과 농촌체험 일석이조

지정면 안창리에 위치한 안창분교는 지난 1948년 지정초등학교 안창분교장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뒤 1993년 소규모학교 통·폐합 계획에 따라 폐교되기 전 까지 37회 69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문 닫은 지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안창분교는 '살구나무예술촌(대표: 박전하)'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안창분교는 이제 문화예술과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살구나무예술촌이라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 발길이 끊겼던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살구나무예술촌은 30여 년 간 연극활동을 펼친 극단 치악무대의 전 대표인 박전하 씨가 만들어낸 공간이다. 과거 치악제와 강원감영문화제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했던 박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골마을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펼칠 수 있는 지역형 축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이와 함께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자양분을 얻고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표 눈에 띈 곳이 안창분교였다. 안창분교는 간현유원지, 오크밸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주변 경관이 수려하며 간현역(현재 폐쇄)과 문막톨게이트와도 가까워 교통망이 좋다. 수도권 및 타 지역 관광객들이 찾기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숙박이 가능해 문화예술인들의 부담 없는 창작활동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판단했다.

지난 2009년 원주교육지원청으로부터 임대받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박 대표가 임대받기 전 안창분교는 회사 연수원, 교회 수련원 등으로 사용되다 2년여 간 방향을 잃고 빈 건물로 방치되어 오다가 알맞은 새 주인을 받아들이게 됐다.

살구나무예술촌 이름을 걸기 전, 주변인들로부터 그만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건물 리모델링 및 임대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폐교를 임대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전국의 유수한 사례들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펼쳤다.

개인으로선 큰 돈인 1억원을 들여 학교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주변을 정비해 반듯한 모습을 갖췄다. 가족들도 박 대표의 뜻을 이해하면서 현재 군대에 간 큰아들을 제외하고 아내와 작은아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살구나무예술촌을 가꿔가고 있다.

각종 공연이나 행사를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당을 비롯해 복도, 전시실, 숙소 등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부를 꾸며 현재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세미나·전시·연습 공간이면서 여러 단체들의 합숙·수련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 지정초 연극반을 지도하는 동안 이 공간에서 합숙·연습을 시키면서 연극반을 인도 무대에 올려 놓기도 했다. 또한 극단 치악무대, 씨어터컴퍼니 웃끼 등 지역 극단들이 강당에서 좋은 공연을 펼쳐 평소 연극을 접하기 어려운 이 일대 주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기도 했으며, 원주출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신동필 씨의 '탄광촌 사람들' 전시회도 눈길을 끌었다.

올해는 강원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운영 공간으로 선정, 10여명의 예술가들이 상주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게 됐다. 오는 9~10월 연극, 무용, 미술 등 장르를 초월한 여러 분야의 작가들이 상주하면서 지역주민과 함께 도자기체험, 연극체험, 오픈스튜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게다가 문화예술인을 비롯해 일반 단체 및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편안히 묵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최소 10명 이상 수용 가능한 숙박공간의 경우 기본료 2만원에 1인 1만원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사용 가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운동장과 주변 토지를 활용한 각종 체육행사와 농업체험을 할 수 있으며, 텐트도 칠 수 있다. 이용자들이 원할 경우 박 대표의 안내로 흥법사지, 김제남 사당, 간현유원지 등 주변 문화관광 자원을 둘러보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의: 010-7346-3500(박전하 대표)

"추억을 쌓아가는 공간 만들 것"
인터뷰: 살구나무예술촌 박전하 대표

폐교에 문화예술공간을 만들게 된 동기는? 어릴 적 제가 다니던 귀래면 용암초등학교도 문을 닫았습니다. 많은 추억과 낭만이 담겨 있는 곳인데 무척 안타깝네요. 그런데 저는 지금 폐교에 살고 있습니다. 폐교와 묘한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저는 폐교가 생기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국민의 교육수준을 끌어올리고자 농어촌지역에 많은 학교를 설립했으나, 시대적 흐름이 많이 바뀐 지금은 전국의 3천 곳이 넘는 학교가 문을 닫아버린 실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등 해외 여러 나라들은 인원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학교를 마을의 문화공간이자 교육공간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금도 일부러 오지학교를 설립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준다고 합니다.

학교는 마을의 상징이자 구심점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능을 했던 곳이 문을 닫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폐교는 탈 농촌현상이나 농촌 공동화 현상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폐교의 활용도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폐교는 잘만 활용되면 주민들의 문화공간, 관광객 유치, 지역경제 활성화 등 좋은 결과를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영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운영하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시설에 투자한 비용을 갚아나가는 것도 쉽지 않고, 임대료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족들이 고생하고 주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지역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면 보다 큰 뜻을 펼칠 분들이 많을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저도 물론 힘들지만 그동안 다른 폐교들을 지켜보면 운영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는 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제도적인 혜택이 주어진다면 폐교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게 문을 잠근 채 방치하는 것보다 원주시나 원주교육지원청이 앞장서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 손길을 뻗어준다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문제점도 발생할 수 있지만 지금 저는 살구나무예술촌을 운영하면서 남다른 보람과 성취감을 느껴 만족스럽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문화시설을 찾아보기 힘든 이 지역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고, 여러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역량을 펼쳐보이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좋은 추억을 안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더 없이 뿌듯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창작활동과 공연·전시활동을 펼쳐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는 마을을 만들고, 지역주민들께 항상 열린 공간으로서 역할을 다해 그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박동식 기자  dspark@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