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에 얽힌 문화유적

김제갑 목사


원주역 앞 도로 복판에 조그마한 비가 서 있다. 차가 번거로이 지나갈 뿐 눈 여겨보는 사람 많지 않지만 외로이 말없이 눈 비 맞으며 서럽게 서 있는데 이 비가 바로 임진왜란때 영원산성에서 당사자는 물론 부인과 아들이 한날 한시에 적과 대치하여 싸우다 죽음으로써 만고 삼강을 이룬 김제갑 목사의 비이다. 여기에 자세히 원문대로 비의 내역을 적어본다.


명나라때 조선국에 증직으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 영경연(領徑筵) 예문관(藝文館) 춘추관(春秋館) 관상감사(觀象監事) 세자사(世子飼)를 겸하고 행직(行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수직(守職)으로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와 병마수군 절도사(水軍節度使) 순찰사(巡察使)를 겸한 의제(毅啼) 김선생의 충렬비(忠烈碑)라 만력 임진(1592)의 난리는 우리나라가 생긴 이래로부터 없던 바이다.


흉적들이 향하는 곳에는 여러 고을이 기세만 바라보고도 달아나서 감히 막는 자가 없었다. 이때 공이 원주에 목사로 있었는데 의리로 분발하여 눈물을 씻고 군사와 식량을 모아서 영원성에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지키기로 하고 충의(忠義)로써 선비와 백성들에게 권유하였다.


이 지방 사람으로 성이 정(鄭)이라는 자가 본래 날래고 용맹하다고 하므로 공이 함께 일하자고 하니 정이 대답하기를”적세가 심히 날카로우니 마땅히 나가 피하였다가 기회를 보아서 도모하는 것이 늦지 않다” 하거늘 공이 꾸짖어 가로되 “네놈하고는 더불어 꾀 할만 하지 못하다”하고 군사를 지휘하여 나가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한번 죽기로 결심하였다”하고 이에 수비하고 전투할 준비를 더욱 갖추면서 주야로 몸소 순찰하며 경계하니 성중에서는 믿고 두려워함이 없었다. 적이 멀리서도 공이 굳게 지키는 것을 알고 먼저 한 사자를 보내어 항복을 권유하고 또한 협박하였다.


공은 즉시 사자의 목을 베어 군사들에게 돌려 보이니 사람들이 다리를 떨면서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논하기를 “내일에는 반드시 적들이 크게 몰려와서 그 분풀이를 할 것이니 피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거늘 공이 말하기를 “땅을 지키는 관리가 간들 장차 어디로 가리요. 감히 피하자고 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하니 여러 사람의 의논이 드디어 안정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적병들이 과연 크게 이르러 사방에서 화살과 돌이 비오 듯 하였다. 성에서는 또한 결사적으로 싸웠으나 한낮을 지나서는 화살이 떨어지고 힘도 다하여 성이 드디어 함락되었다.


군관 오항은 힘이 센 사람이었다. 공을 등에 업고 피하고자 하였으나 공은 말하기를 “내 평생에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는데 환란을 당하였다”하여 “어찌 참 목숨을 아끼리요. 너희들은 피하는 것도 옳다”하고 드디어 조복을 입고 걸상에 앉았는데 날아온 화살에 등을 맞았으나 오히려 움직이니 않으니 적이 공을 잡아서 절을 하라고 협박하였으나 공은 꼿꼿하게 서서 굽히지 않고 꾸짖기를 그치지 않다가 드디어 살해를 당하였다. 공의 작은 아들 시백(時伯)도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아니하다가 공과 함께 죽었다. 뒤에 부인 이씨도 칼로 목을 스스로 찔러 죽었는데 그때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오항의 무리가 밤을 이용하여 성으로 들어가 세분의 시체를 거두어서 선비 고현으로 더불어 원주의 주천현에 임시로 장사를 지냈는데 적병이 물러간 뒤에 비로소 여주 땅으로 옮겼다가 장사를 지내고 뒤에 다시 충주 복성동(현 앙성면)으로 이장하였다.

<691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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