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한지고! 세계만방이라 하거늘 
 도적질하는 왜적을 견제할 만한 나라는 
 하낫도 없었더란 말이냐."

 

　동편 하늘을 노려보고 있던 김 훈장은 주먹을 쥐고 마루바닥을 친다.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 있으며 나라 잃고 살아 무엇하겠느냐! 으흐흣흣…"

　통곡이다.

　"아, 아버님! 어이 이러십니까."

　마루에는 오르지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던 한경이 혼비백산한다. 콧물 한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다. 그는 감기를 앓고 있었다.

　"통분하다! 이런 일이 어디 또 있겠느냐? 으흐흐흐, 충간의담(忠肝義膽)한 선비들은 자결이요 내 강토를 팔아먹는 문서에 도장 찍은 역적놈들! 앞으로 이 나라 사직은 어찌 될 것이며 백성들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으흐흐…."

　"아버님, 일기가 매우 찬데 방으로 드십시오."

　"이놈아! 방이 다 무엇이냐. 방에 들어 편한 잠자게 되었느냐? 원통한지고! 세계만방이라 하거늘 도적질하는 왜적을 견제할 만한 나라는 하낫도 없었더란 말이냐."

　땅거미가 진다. 김 훈장의 비통한 울음은 아랑곳없이 흐려 있던 동편하늘에 별이 하나씩 둘씩 돋아나며 반짝거린다.          

　<토지 1부 4권 제5편, '떠나는 자, 남는자', 177쪽, 나남출판>

　
　을사늑약으로 통분하는 김 훈장과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 한경과의 대화 내용이다.

　　을사늑약으로 통분하는 김 훈장과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 한경과의 대화 내용이다.

　일제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면서 한반도 침탈을 노리더니 1905년 불법적인 을사늑약을 체결해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5년 뒤인 1910년에 강제 합병되어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올해는 을사늑약 95주년, 강제합병 100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를 망각할 때 역사는 또 되풀이 된다는 교훈을 21세기 분단시대를 사는 우리는 더욱 뼈저리게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원주투데이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