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곡감리교회 구 예배당에서 열리고 있는 빈집전.

 50년 넘은 공간에 새 역할 부여
 미술적 영감 예술적 언어로 표현

　지은지 50년이 넘은 시골 예배당이 전시실로 변했다. 얼핏 공간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설치작품들이 바닥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빛이 나오는 가구, 창 대신 또는 창과 나란히 배치된 판화작품, 작은 등 여러개가 걸린 단상. 의미를 알수 없는 신호음을 토해내는 모니터 등 일반인들에겐 생경한 광경이다. 

　창밖에서 이 공간을 들여다보는 시골마을 주민들은 낯선 시선을 보낸다. 주위의 부추김에 혹은 작가들의 권유에 못 이긴척 하나 둘 예배당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 잠시후 그들의 표정에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강한 호기심이 드러난다. 질문과 답변이 오가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더한 제안도 이어진다. 스스로 이 공간에 동화돼 창작욕구까지 발현하는 것이다.

　2008년 12월 시골마을 판부면 서곡리 서곡감리교회 구 예배당에서는 한참 재미있는 실험이 진행중이다. 일명 '빈집전'이라 불리는 전시회가 그 것. 다른 지역에서는 구도심이나 재래시장 빈 상가 등을 활용해 심심치 않게 진행됐지만 원주에서 빈집전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병호 원주미협 회장을 비롯해 판화가 이명준 씨, 목공예 디자이너 박종선 씨, 멀티미디어 작가 김민호 씨 등 젊은작가 4명이 1차 전시회를 가졌고 지난 22일부터는 '우연한 충돌'을 주제로 두번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병호 회장이 기존 등작업을 확대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박종선 씨는 가구와 소리를 소재로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동아미술상 수상자인 서양화가 김학광 인천대 외래교수도 이 작업에 동참했다. 이 전시회는 연말까지 계속된다.

　이들이 빈집전을 기획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점차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공간에 새 역할을 부여하고, 그 공간에서만 얻을 수 있는 느낌을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몇 곳 남지않은 이발소부터 중앙로 금은방까지 3~4곳을 대상으로 삼고 접촉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 때 머리속에 떠오른 곳이 이곳 서곡감리교회 구 예배당이다.

　이 공간은 1952년 미국선교사협회의 지원과 지역 교인들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50년도 훌쩍 넘은 건물이다. 몇해전 바로 옆에 새 예배당을 세운 뒤 성가대 연습과 성경공부 장소로 쓰이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창고역할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이 곳이 고향인 박종선 씨는 결혼식을 올린 각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치악예술관에서 전시회를 열더라도 관람객이 하루 몇십명 다녀가질 않는데 이곳에서는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틀만에 벌써 수백명이 다녀갔다"며 "역할을 잃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뜻이 있지만 정형화된 전시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미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어 작가 스스로에게도 행복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서곡감리교회 김경남(51) 목사는 "평소에도 일주일에 세번 예배 드리는 곳으로만 사용되는 교회공간의 활용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과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었다"며 "교인들이나 마을 주민들에게 추억이 담긴 구 예배당을 젊은작가들이 새롭게 되살린 것 같아 흡족하다"고 말했다.

　젊은작가들의 의욕적인 도전이 지역내 수 많은 유휴공간과 지역 예술계에 어떤 반향과 변화를 가져올지, 이들의 실험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