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행구낚시터가 보인다. 행구낚시터를 지나 행구동 카페촌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 있는 슈퍼가 신월랑슈퍼다. 오른쪽은 원주공고 방향이고 곧바로 올라가면 길카페가 나온다. 이 길로 올라가야 한다.

행구동전망대를 지나 카페 이삭 앞을 지나간다. 조금 이르다 싶은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길카페'로 유명한 이곳은 밤이면 차를 주차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이 곳에서 치악산기도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치악산기도원 앞에는 편안하게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도록 나무그늘 밑에 의자를 설치해 놨다.

갈수록 짙어지는 녹음 사이로 아침 해가 파닥파닥 솟아오른다. 조금 걸으니 장작을 박스에 담고 있는 청년들이 상큼한 선글라스를 끼고 인사를 한다. 강원장작 직원들인 것 같다. 옛날 대가집 마당에 쌓아 놓은 것 같은 장작더미가 인상적이다.

길이 참 잘 닦여 있다. 오르막을 성큼성큼 올라가노라면 '꽃밭머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옛날에는 화전촌이라고 불리웠다는데, 멋지고 아름다운 전원주택들이 십여 가구쯤 있고 여기서 내려다보는 원주시내는 탁 트여 시원하다.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전원주택을 짓느라, 다음 달에 오픈한다는 대형식당을 짓느라,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

여름이면 마을 입구에서 치악산 복숭아를 판다고 한다. 밤낮의 기온차가 비교적 크고 물 빠짐이 좋은 산비탈이라 맛 좋은 복숭아가 열린다고. 순환코스 마지막 부분에 만나게 되는 신월랑 마을에서도 복숭아를 파는 곳이 있다. 신월랑 복숭아는 1996년 전국 포도 복숭아 품평회에서 미백복숭아를 출품해 대상인 농림수산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마을 끝까지 가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그중 가장 상태가 나쁜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끊겼고, 오른쪽은 '치악산 오리 날다'라는 황토찜질방이다. 나쁜 길이라고는 했지만 울퉁불퉁해서 그렇지 비만 오지 않는다면 걷기엔 괜찮다. 길옆으로 어린시절 꽃반지 만들던 토끼풀이 쫙 깔려 있다. 향기가 너무 좋아 꽃을 찍으려다 벌을 찍는다. 다소 위험한 동물(?)의 출현임에도 불구하고 벌은 꿀을 따느라 까딱도 않는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가 귓속에 둥지를 튼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다. 한사람이 다닐만한 오솔길이지만 험하지는 않다. 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가는데 애완견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 턱하니 앉아있다. 자세히 보니 버려진 개 인듯한데 배가 고파 일어설 힘도 없는 모양이다. 고민하다가 일단 마을로 가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침 복숭아밭에서 일하시던 남길우 할아버지가 집으로 데려가 허기를 채워줬다. 그나마 운이 좋은 개다. 할아버지가 잘 돌봐 주시리라 믿는다.

한 시간 정도를 개 때문에 지체하고 나니 갈 길이 바쁘다. 5분 정도 산길을 타고 내려오면 원각사 옆에 간이 화장실이 있다.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걸으니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할아버지가 주신 캔커피를 마시며 행운농장을 지나, 애네아의 집을 지나, 정원이 예쁜 집을 지나, 우리가든 앞까지 단숨에 걷는다. 어깨 너머로 건너가는 과거를 돌아볼 새가 없다.

우리가든 앞에서부터 거음교까지는 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이다. 차가 빠르게 지나칠 때는 매우 위험하게 느껴진다. 걷지 않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걸어 보니, 사람이 걷고 있을 때는 차 속도를 현저히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밝은 색 옷을 입고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음교에서 걸어오면 '눈부신 날에'라는 오리구이집이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지 말고 왼쪽 길로 계속 가면 신월랑 마을이 나온다. 해는 솟아올라 정오로 향해가고 땀은 흘러 땅바닥으로 에둘러 사라진다. 신월랑슈퍼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시 신월랑슈퍼까지 오는 동안 삼림욕을 하는가 하면, 산 속 외길을 걷기도 하고, 차 많은 위험한 도로를 걷다가, 옛 마을로 들어가 집들을 구경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거치는 알찬 코스다.

고민교 객원기자

걷기 도우미

☞강원장작(763-9708)에서는 참나무 장작인 바비큐용 나무를 판매한다. 택배비 포함해 1박스 에 1만2천원 정도라고.
☞복숭아 철에는 꽃밭머리와 신월랑 마을 중간에 있는 창고 겸 작업실에서 막 딴 복숭아를 살 수 있다.
☞간이화장실이 꽃밭머리와 원각사 앞 두 곳에 있는데 화장지는 챙겨가야 한다.
☞복분자와 복숭아를 파는 행운농장(010-2430-2539)도 들러볼만 하다.
☞신월랑까지 가는 버스는 8, 80, 81, 81-1. 황골묵집 8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