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구나, 싶어 걸어가는데 웃음소리 왁자하게 들린다. 충주시에 있는 야동초등학교 15회 동창생 십여 명이 단체로 나들이 나온 길이란다. 충주, 제천, 서울 등 여러 곳에서 사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야외로 나왔는데, 너무 좋아 흥이 절로 난다는 것이다. 오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모두들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기 있고 발랄하였다.
　개나리꽃은 이미 지고 꽃 진 자리에 잎이 솟아올랐다. 진홍빛 영산홍만이 아직 피어 제방길을 환히 비춘다. 혈액순환에 좋고 면역기능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맨발지압로가 두 군데 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열심히 지압을 하고 계셨다.
　이천에 산다는 김모(41) 씨는 일주일에서 이 주일에 한 번 정도 남한강 산책로를 걷는다고 한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와 단조로움을 자연과 걸으면서 훌훌 털어내고 나면, 일주일 지내기가 수월하단다. 이날은 직장동료와 둘이서 걷는 중이었다. 
　두 사람을 뒤로 두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멀리서 시간을 낚는 사람들, 외로움을 낚는 사람들이 점처럼 보인다. 서산대사의 선문답시를 지나칠 수 없다.
　
　눈 덮인 들길을 가는 도중에 / 함부로 발자국을 내지 마세나
　금일의 나의 발자취는 / 필히 후에 오는 이에게 이정표가 되느니  
　
　툭 트인 길이라 바람이 많이 불면 많이 부는 대로, 적게 불면 적게 부는 대로, 온 몸으로 바람을 다 받으며 걷는다. 남한강대교까지 오는데 삼십분이면 거뜬하다. 중간에 십여 개 정도 의자가 있어 쉬어 가면 좋다. 앉아서 그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법천소공원에 있는 한 칸짜리 간이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돌 거북이 뿜는 물을 마실 수 있다.
　걷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을 둘러보았다. 은행나무 푸른 잎들이 오래된 집들을 덮어 싱싱한 마을로 만들고 있었다. 법천사지 당산나무 정령에게 이끌려 지광국사현묘탑에도 들렀다. 터 발굴을 하느라 주변이 어수선했지만, 처음 가는 길인데도 처음이 아닌 듯, 처음 보는 고목인데도 처음이 아닌 듯, 기시감에 시달렸다. 세 시간의 외출이 삼백년의 시간을 건너 온 듯, 아련한 향수가 저녁노을과 함께 내 뒤를 길게 따라왔다. 

걷기 도우미

☞차를 가져올 경우 흥원창에서 시작해서 남한강대교까지 순환하는 길이 좋겠다. 아니면 법천소공원에 차를 세우고 흥원창까지 갔다 오는 길. 넉넉잡아 1시간이면 된다.
　☞법천소공원에 간이화장실이 있다. 중간에 빠지는 길이 없어 미리 해결해야 한다.
　☞주변에 거돈사지삼층석탑(보물 제750호),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 서돈사지(사적 제168호), 원성법천리고분 등 문화재가 많이 있다. 꼭 들러보길 권한다.
　☞시내버스는 부론면 55번 2회, 흥호리 51번 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