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빵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빵과 올리브나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현실은 자주 이들의 동거를 허락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숭례문의 소실은 이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빵을 얻기 위한 활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재화로서의 가치를 쉽게 인정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올리브나무는 평소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지난 600년간의 풍상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던 숭례문은 우리의 어머니처럼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왔다. 부모님을 잃은 다음에야 그분들의 존재가치를 깨닫는 탕자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소실한 다음에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평소 수많은 사람들이 남대문 거리를 지나치면서도 그 자리에 있는 숭례문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각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숭례문의 나이가 600년이라는 것을 듣는 순간 그들의 눈동자는 반짝인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외관상으로 보이는 숭례문만이 아닌, 지난 600년을 지탱해온 한국의 문화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숭례문이라는 한국문화 앞에서 한국경제성장의 동력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아직도 한국인들이 빵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개개인의 삶의 현장에서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 사이의 긴장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숭례문 사건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심장부 가운데 하나인 정부종합청사의 잇따른 화재는 우리의 구겨진 자존심을 더욱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실용과 시장경제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지만, 새 정부 역시 빵과 올리브나무의 긴장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새 정부가 눈에 보이지 않기에 화폐로 환산하기 어려운 정신적 및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것에 대한 평가를 도외시 한다면, 정부가 내걸고 있는 747이라는 경제적 가치의 추구 그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그것이 달성된다 하더라도 문화적 가치의 희생 위에 달성된 경제적 가치가 갖는 의미는 퇴색되게 마련이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주요 정책 과제 가운데 올리브나무와 관련된 공약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지난 정부처럼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화를 위치지우는 것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문화조차 실용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본다면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가치에 대한 성찰 없는 실용은 사상누각이라는 구절이 자꾸만 메아리친다.
임상오 상지대 문화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