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육임을 확인한 박정옥 할머니(사진 왼쪽)와 박정자 할머니는 두 손을 맞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70년만에 고향땅을 밟은 중국 원주촌 1세대 고향방문단이 지난 12일과 13일 옛 기억을 더듬어 신림면 신림리와 문막읍 동화3리, 흥업면 사제1리로 각기 고향마을을 찾아 나섰다.
　기억속에서는 언제나 푸근하고 정겨운 고향이지만 지난버린 70년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 특히 외가쪽으로 6촌간인 박정옥 할머니와 김광복 옹은 희비가 엇갈렸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해 나선 길은 한 사람에겐 벅찬 감동을, 한 사람에게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이젠 소원 다 풀었다"
　"아부지 이름이 어떻게…? 아부지가 박복출이니? 네가 작은아부지 딸이니 정말! 야~ 정말 이렇게도 만나게 되는구나…."
　팔순을 바라보는 박정옥(78) 할머니 눈에선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박 할머니를 힘 주어 끌어 안은 박정자(68·호저면 산현리) 할머니도 "언니… 언니…"를 찾으며 울먹일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3일 원주시와 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장순일)의 도움으로 호저면 산현리를 찾은 박 할머니는 산현초등학교 인근에 사는 사촌동생과 극적인 상봉을 했다.  
　할머니는 하루 전 고향마을을 찾아 나섰을 때만 해도 일행 몰래 돌아서 눈가를 훔쳤었다. 설랜 맘을 안고 찾아 온 고향이었지만 기억 속 고향과 기대한 친인척의 소식을 아는 이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이날 만큼은 세상을 모두 얻은 듯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수확은 또 있었다. 사촌동생을 통해 원주에 살고 있는 막내고모의 딸과 질부까지 상면할 수 있었던 것.
　할머니는 "이리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젠 정말 소원을 다 풀었습니다. 고향방문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감격해 했다.
　박정자 할머니도 "우리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언니 여기서 오래 쉬었다 가요"라며 사촌언니와의 만남을 기뻐했다.
　생면부지였지만 혈육임을 확인한 두 노인은 "우리 이제 서로 자주 내왕하면서 형제간의 정을 나누자"며 굳게 손을 맞잡았다. 

	▲ 신림 보건지소 앞 전나무를 찾은 김광복 옹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상봉 무산 김광복 씨 끝내 눈물
　12일 신림면을 찾은 김광복(76) 옹은 보건지소 앞 전나무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마을을 가로지른 개울과 다리, 집 앞 구멍가게, 뒷 마당 대추나무와 함께 기억속 고향에는 이 전나무도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
　김 옹은 "가족들과 중국으로 떠날 때 면사무소 마당에 모여 출발했는데 이 전나무가 그 때도 이 자리에 서 있었다"며 반가워 했다.
　김 옹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려운 걸음을 한 김홍기(87) 전 신림면장도 "지금의 보건지소 자리가 1930년대에는 면사무소 자리였고 당시에도 이 전나무가 있었다"며 김 옹의 기억을 확인해 줬다.
　하지만 감회에 젖어 웃음짓던 김 옹은 이내 굵은 눈물을 떨궜다. 감정에 북받쳐 슬픈 독백도 이어졌다.    
　"고향을 떠날 때는 할머니, 부모님, 고모, 삼촌, 형제들과 함께였는데 70년만에 돌아와 서 있는 지금은 나 혼자구나…. 그래도 너만은 이 자리에 남아 반겨주니 고맙다…."
　짙은 회한에 탄식하던 노인은 한참이나 전나무를 부여안고 그렇게 눈물을 그치질 못했다.
　하지만 김 옹의 눈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김 옹은 집안 어른들을 통해 어릴적 다른집에 양자로 간 숙부의 아들이 원주에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방문기간 사촌과의 만남을 손꼽아 고대했었다. 마침 기념사업회와 연락이 닿아 70년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상대방의 거절로 상봉은 불발로 그쳤다.
　윤병진 기념사업회연구위원은 "두 분이 대면을 못해 정말 혈육인지 확인은 못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가능성이 높았다'며 '그러나 거듭된 간곡한 부탁에도 원주에 산다는 인척이 끝내 만남을 거절하더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촌동생이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 옹은 "정말이냐?"며 수차례 되묻고는 눈시울을 붉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민호·허연숙 기자

 원주촌 고향방문단 이모저모

 "반갑습니다" 시민들 따뜻한 환영

　원주촌 1세대를 대하는 원주시민들의 눈길은 따뜻했다. 고향방문단이 찾는 식당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느냐" "잘 오셨다. 맛있게 드시라"는 따뜻한 인사가 이어졌다. 11일 방문단이 중앙시장을 찾았을 때는 좌우 좌판과 상점 주인들이 '고향의 맛'이라며 부침개와 메밀총떡을 내밀었다. 박정옥 할머니는 "중국에는 메밀이 귀해 먹어보질 못했는데 참 맛있다"면서 "원주에는 메밀이 많이 나느냐?"며 신기해 했다.
　12일 고향 신림면을 방문한 김광복 옹은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김 옹이 70년 전 집 앞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사먹던 추억을 떠올리자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트주인 변 모(62·여) 씨가 선뜻 사탕봉지를 선물한 것. 변 씨는 "멀리서 고생하시다 오신분한테 이 정도 선물이 대수겠느냐"며 "모쪼록 고향에서 좋은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흥업면 원주연세의원(원장: 이경우)은 지난 12일 오전 고향방문단 전원에게무료로 건강검진을 실시해 훈훈한 원주인심을 전했다.

 "박경리 선생 조선족들도 존경"
　토지문학공원을 찾은 방문단은 고창영 소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일행은 "박 선생이 아직 생존해 계시느냐?" "연세는 올해 어떻게 되시냐?"며 선생의 최근 근황을 묻기도.
　특히 방문단을 인솔한 손춘일 연변대 교수는 "박경리 선생 뿐 아니라 사위인 김지하 시인도 조선족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소개하고 "소설토지의 배경중 한 곳인 간도땅을 박 선생이 다녀가지도 않고 소설속에 정확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 위대한 작가는 역시 남다르 면이 있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강원감영으로 자리를 옮긴 방문단은 이원희 소장의 안내를 받아 마침 선화당에 전시된 옛 사진을 감상하며 새삼 감회에 젖기도. 특히 1930년대 원주읍 전경 사진 앞에서는 "우리가 중국으로 떠날 당시 원주의 모습"이라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방문포기한 김양수 옹 편지 보내와
　고향방문을 눈 앞에 두고 병석에 누운 아내의 간호를 위해 방문을 포기한 김양수 옹(본보 11월 일자 면 보도)이 항일독립운동원주기념사업회 앞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편지를 띄워 눈길.
　김 옹은 편지에서 "여생에 더 바랄 수 없는 특별한 기회를 잃게되니 눈물이 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김 옹은 하지만 "원주촌 조사연구팀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뤄낸 성과는 70년간 고향을 그리며 살아 온 우리에게 큰 힘이 됐음은 물론, 조선인의 민족정신과 애국주의 정신을 분발시키리라고 의심치 않는다"면서 기념사업회 장순일 회장과 윤병진 연구위원, 임찬경 박사 등에게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시 공무원 밤잠 잊은 노력 결실
　박정옥 할머니가 사촌동생과 상봉하기까지는 박웅서 주민생활지원국장과 이성철 과장을 비롯한 원주시 문화관광과 향토문화계 직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생존해 있는 친인척이 있다면 상봉할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하라"는 김 시장의 특별지시도 있었지만 박 국장과 이 과장은 방문단을 각 마을까지 안내하고 마을 어른들을 직접찾아 친인척을 수소문하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원주촌 연구사업을 담당한 김성찬 향토문화담당, 황보연 씨 등 실무진과 기념사업회 윤병진 연구위원 등은 퇴근까지 미루고 추적에 추적을 거듭, 박 할머니의 연고와 친인척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김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