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조사 차 약 일주일 간 일본여행을 하게 됐다. 나로서는 첫 번째 일본 여행이었다. 일 주일 간의 여행으로 한 나라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그 사이 나의 일본에 대한 관점을 대폭 수정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한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일본은 여전히 나에게 별로 존경할만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이 내가 일본에 대해 느꼈던 만만함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어떤 단단한 인프라의 핵 같은 것, 우리가 아직 가능성의 형태로만 가지고 있는 것을 이미 형태화시킨 능력에 대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 능력은 대체로 어떤 내용이 아니라, 견고한 외양과 더욱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이고, 내용적 실질에 관한 한, 한국의 경쟁력은 일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확신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력이 아직도 가능성의 상태에 더욱더 머물러 있다면, 일본은 그것을 이미 형태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날 오사카에 있는 <동양도자기박물관>을 방문했다. 한중일 세 나라의 도자기들의 콜렉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동양도자기 콜렉션이지, 실은 한국 콜렉션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체 전시물의 70% 정도가 한국 도자기였다. 전시를 보는 동안, 내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찼다. 우리나라에서조차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무더기로 전시되어 있었다. 대체 왜 이 아름다운 보물들을 일본 땅에서 봐야 한다는 말인가. 얼마나 많이 훔쳐왔길래, 이 작은 전시관을 한국 유물이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일까?
　안내문에는 이병창이라는 한국 외교관이 일본에 살면서 수집한 것을 기증받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한국 땅에서 수집한 것이 아니라, 일본 땅에서 수집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전시물이 강탈 문화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 도자기들은 그 우아함에서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와 비교되지 않는다. 그 부드러운 선, 조용한 색채, 절제된 크기, 의도된 결핍. 마치 신성한 자연 앞에서 나는 감히 완벽한 물건을 만들 수 없어, 라는 듯이 절묘하게 찌그러뜨린 선. 너무나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도자기들. 그 도자기에 비하면, 일본 도자기는 잔망스럽고 조잡하고, 중국 도자기는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들은 마치 고약한 집에 시집간 아름다운 누이처럼 파리한 얼굴로 전시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전시관이 전시품의 일등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한국도자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국보급 일본자기였다. 정작 모든 빛을 제공하고도 대접도 못 받고 있는 신세. 나는 전시실을 울면서 돌아다녔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일본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한국적인 것>이 가진 경쟁력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일본의 군화발 아래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은 힘을 숭앙하는 자들의 무지막지한 횡포 아래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똑같다. 힘에 기대어 권력을 찬탈한 친일파의 후예들이 한국 안의 일본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빛 속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일주일 간의 일본 여행은 발견이었고 동시에 좌절이기도 했다.
김정란(상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