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문  전 원주MBC 보도국장

9월 4일 밤10시50분 EBS-TV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무위당 장일순의 따뜻한 혁명”.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선생 10주기를 맞아 특집으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EBS에 방영된 프로에는 선생이 현 원주대성고등학교를 설립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선생이 약관 20대 때 학교법인 대성학원(학교)을 설립하여 지역의 후학 양성에 힘썼다는 내용이다. 특히 방송에서는 문교부가 선생에게 대성학원 설립을 허가한 공문서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대성중고등학교 인터넷 홈페이지(www.daesunggo.hs.kr) 연혁에는 설립자가 선생이 아니라 초대 교장을 지낸 분으로 올라있다. 무위당 선생은 학원설립 인가를 받기 전 결성된 기성회 회장이라고만 4명의 다른 회원 이름과 함께 기재돼있다. 그리고 건학이념 페이지에는 초대 교장을 지낸 분이 대성학원 설립인가를 받았다는 구절을 특별히 눈에 잘 띠는 붉은 글씨로 강조하여 기재했다. 설립자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학교 홈피 연혁소개는 5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답지 않게 설립자 부분을 제외하면 특별한 내용도 없이 단 9건만 간단히 기재돼 있다. 이와 달리 총동문회 홈피 연혁 페이지에는(www.ds1954.co.kr) 74건이 자세히 기록돼있어 대조를 보인다.
따라서 무위당 선생 관련 기록은 동문회 홈피에서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1953년 11월 무위당 선생이 부동산 25,643평, 현재 설립자로 돼있는 분이 438,649평(임야,전,답,대지)을 증여하여 법인 재산으로 등기를 필하고 이듬해 3월24일 대성학원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선생은 설립인가와 함께 초대 및 2대 재단이사장에 취임하여 1960년까지 6년 동안 이사장을 역임한다.
그리고 현재 설립자로 돼있는 분은 개교이후 61년까지 7년 동안 교장직에 있다가 5.16직후 61년 12월에 제4대 이사장이 된다.

EBS가 “대성학원 설립허가서”라는 자막과 함께 보여준 공문서에는 장일순선생이 단기4286(서기1953)년 12월 재단법인 대성학원 설립을 신청했고 단기4287(1954)년 3월 24일 문교부장관을 대리하여 문교부차관(許增秀)이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종전 직후여서 인지 서류양식이 아닌 검은 줄만 쳐진 종이에 육필로 쓰여졌지만 차관 이름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고 관인도 찍혀 있다.
그동안 원주지역에서는 대성학원의 진짜 설립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사람들 입에 가끔씩 오르내렸다. 그러나 한번도 공론화 된 적은 없다. 사학 재단 내부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번 EBS 방송에 공개된 공문서를 보면 학교측 홈피 기재내용과 달리 무위당 선생이 최초 설립인가를 받은 것이 확실해 보이며 따라서 선생이 대성학원의 설립자라는 주장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EBS프로는 선생의 업적을 소개한 것이지 학원설립자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위당 선생의 업적이 우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업적은 선생의 업적이자 지역의 자랑임으로 올바로 기록돼 후세에 사실대로 전달돼야한다. 특히 후세교육과 관련한 선각자의 발자취는 더욱 정확하게 기록돼야한다. 언제까지나 설립자 문제를 덮어 둘 수 없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고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지 않을 경우 진실도 가리지 못한다는 지역 차원의 비아냥을 사게된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에 공개된 공문서뿐 아니라 대성학원 설립당시 관여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생존해 있고 학교 사정을 잘 아는 초기 졸업생들도 대부분 생존해 있다. 진실을 가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교육부를 통한 설립자 확인과 공개된 문서의 검증도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다.    
6.25 동란 직후 모두가 어렵던 시절 학교를 설립해야할 국가를 대신하여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범인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현재 60대 중반의 초기 졸업생들로부터 당시 재단이사장이면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던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선생은 학생들의 혀를 손으로 잡아당겨 가며 영어발음을 가르쳤고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반장으로 하여금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게 하여 대신 매를 맞아 학생들의 경각심을 높였다고 한다.
근래 일부 사립대학 재단 설립자들의 비리가 잇달아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학교법인의 설립자가 누구인가가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얼마나 올바른 인재육성을 위해 노력했고 성과가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장일순 선생의 발자취는 작년 9월에도 KBS-1TV ‘인물현대사’ 프로에 방영되는 등 선생은 살아생전 보다는 사후에 언론의 조명을 받는 원주가 낳은 큰 인물이다. 인물평가는 사후에 한다는데 선생이 사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것은 선생의 발자취가 그만큼 크고 본받을 점이 많은 선각자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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