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종 ) 한라대 경제통상학부교수

미국의 각급 학교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8월말과 9월초에 새 학년도를 시작한다. 개학 후 2주 뒤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와 중학교로부터 각각 ‘부모의 밤(Parent Night)’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았다.
저녁 6시 경에 학교 강당에 모여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간단한 학교 소개를 받았다. 자녀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각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지, 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점에 유의하며 자녀를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안내 받았다. 선생님들은 안내서를 나누어 주거나 파워포인트 자료 등을 성의껏 준비하였다. 하나같이 밝은 얼굴에 자부심이 넘쳐서 인상적이었다.

교실마다 학부모들로 거의 꽉 채워져 있어서 참여의 열기가 뜨거웠다. 하나같이 진지한 모습으로 선생님들의 말씀을 경청하였다. 질문에 대한 선생님들의 답변도 솔직하고 명쾌하였다. 밤 10시 가까이 되어 행사는 끝났다. 정말 훌륭한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의 밤’ 같은 행사가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공교육이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행사가 성사되기도 어렵고, 모처럼 성사되어도 학부모들의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끝나기가 힘들 것으로 짐작되었다.  

서울 강남에서는 학생들이 학원에서 밤늦게 또는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모자라는 잠을 학교 수업 시간에 보충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강남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다가 교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소문대로 수업이 진행 중인데도 거의 모든 교실에서 거의 반 정도의 학생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놀라움과 충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공교육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확고한 대책 마련이 되지 않고 있다. 공교육 수요자의 생각과 자세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교육 공급자의 책임도 무겁다. 양질의 공교육이 공급되면 수요자들은 당연히 공교육을 사교육보다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교육부는 선생님들을 불요불급한 각종 행정업무에서 해방시켜드려야 한다. 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수준과 자질에 맞추어 가르침으로써 흥미롭고도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에 미국의 AP(Advanced Placement) 과정 같은 고급 과정을 설치해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같은 화학을 공부하더라도 고교과정 화학을 공부해서 A학점을 취득한 학생보다 대학 수준인 AP 화학을 공부하여 A학점을 딴 학생의 경우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 (대학 입학 후 기취득한 AP과정 학점은 대학이 인정해 주어 중복 이수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우수한 학생이나 부진한 학생이나 한 반에 몰아넣어 중간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면 한편에서는 너무 따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까다로운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저절로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가된다. 가르치기 힘든 AP과정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드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이는 선생님들 사이에 선의의 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도 분발이 요구된다. 현실이 이렇게까지 오게 된 데 대한 뼈아픈 자성이 있어야 한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앞을 다퉈 몰려드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선생님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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