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진  (본사 편집고문)

얼마 전 어느 신문 독자투고란에서 중국소수민족인 이족의 설화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한 후 소감을 쓴 글을 읽고 오늘날 중국 국력신장의 탄탄한 배경과 자존심을 엿볼 수가 있었다. 우리 나라 춘향전과 같은 성격의 이 설화 학술대회에 미, 일, 한국, 러시아 등에서 2백 여명이 대거 참석, 국제적인 높은 관심과 함께 성황을 이뤘다는 내용이다. 중앙도 아닌 지방 행사에 많은 외국학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단순히 학술대회를 잘 치렀다는 그 이상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어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대륙에선 그 동안 소홀히 했거나 지나쳐왔던 자기 문화역사에 대해서 규모가 크던 작던 가리지 않고 발굴하여 부흥시키고 선양하는 일에 온 나라가 열풍에 휩싸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소수민족인 이족의 설화까지도 이 바람에 국제적인 조명과 각광을 받는 과분한 영예를 누리게 된 셈이다. 경제부흥의 자신감이 연쇄적으로 중국내 각분야에서 민족자존으로 강렬히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 고구려 사를 자기네 지방사, 변방 사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민족 자신감, 중화 우월주의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릇된 대국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럽고 또, 부럽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는 5천여 년만에 가난의 굴레를 벗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지만 그 자신감으로 무엇을 했는가에 상도할 때 깊은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국처럼 우리도 일찍이 그 동안 소홀했던 고구려 사나 북방 사에 눈을 돌리는 등 우리의 문화와 역사 세우기에 적극 나섰더라면 지금 같은 수모를 당치 않았을 것이란 후회가 든다. 좀 살게되자 남들과는 달리 미래를 위한 준비보다 현재를 즐기는 쪽으로 국부를 낭비해 우리만 손해본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가슴에 멍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참된 세계화(glovalization)는 현지화(locolization)를 동반하면서 일궈내야 함을 오늘의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국문화를 홀대한 세계화는 결국 문화적 식민지로 가게 된다는 교훈도 함께 말이다. 그래서 요즘엔 세계화와 지역화를 조화시킨 glocolization이 회자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경제가 잘 나가도 문화적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래 위에 고층 건물을 짓는 것 같아 어려움이 닥치면 그대로 무너져 버리게 된다. 동서고금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 나라 기업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독특하고 건실한 기업문화가 자리잡고있는 기업은 몇십 년이 되어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세계기업으로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모두 도태되고 말았다. 사회적 문화마인드는 경제가 잘 나갈 때 뿐 아니라 어려울 때 특히 빛을 발한다. 그런데 경제가 부진할수록 제일 먼저 손을 대는 부분은 문화창달 분야임을 누구든 부인 할 수 없다.

어려울수록 나라경제를 살릴 문화력 창출에 힘을 쏟아야한다. 사실 원주 타투의 원조라 할 영국 에딘버러타투도 2차 대전에 피폐해진 민심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 시민을 사랑하는 시장의 문화마인드가 세계적 문화행사로 에딘버러타투를 우뚝 서게 했다. 사실 이런 점에선 우리 원주시도 많이 배우고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란 손익계산을 따져 형상화 할 수 없는데도 계수에 익은 공직자들은 으레 주판질부터 하려고 하니 핀트가 맞을 수가 없다. 성경에도 곤고하면 생각하라고 했는데 이는 실패의 원인을 궁구하고 내일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경제가 어렵고 삶이 힘들수록 많은 문화시책을 개발해 시민들을 재충전,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9월 들어 한지 문화제를 비롯해 10월까지 치악제 등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잇달아 열리는데 바로 이런 마음과 뜻으로 이들 행사를 지원하고 참여한다면 어느 때보다도 알차고 의욕 넘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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