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원주시사회복지협의회장

지난 6월 22일 이라크에서의 김선일씨 피살 소식은 우리 한국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우리는 비디오 방영에서 김씨가 “나는 살고싶다”고 애타게 울부짓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기에 지금도 그 메아리를 떨쳐버릴 수 없다. 현재로서는 고인의 명복을 경건히 비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그 메아리 속에 담겨진 한 맺힌 절규는 우리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도려내는 아픔으로 느끼게 한다.

김선일씨 피랍·피살사건을 놓고 왈가왈부 말도 많은 것 같다. 대통령은 감사원으로 하여금 관련기관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였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하기로 여야간에 합의하였고, 의원 50명은 파병철회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방송에서도 앞다투어 김씨 피살사건과 파병문제를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철저한 진상조사와 명확한 문제점 규명과 확실한 재발방지책은 꼭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필자의 소박한 심경으로는 이런 논란들이 자칫 「빈 수레가 요란스럽다」는 속담에 비유되고 말지나 않을까 기우감을 떨칠 수 없다.

또한 김선일씨의 애통한 죽음을 맞게된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할 때 지금의 요란스런 말들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할 뿐일 수도 있다. 이젠 어떤 말들을 하여도 고인이 다시 살아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일 뿐이지 않은가 싶다. 물론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유가족의 슬픔을 덜어주고 아픔을 함께 하려는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 여겨진다.
온 국민이 내 일처럼, 국가도 내 책임이라 생각하고 사태수습에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일 때 멍든 상처를 다소나마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재외 교민에게는 고국의 정부가 그들을 보살피는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도 이번 피랍·피살사건에 있어서 정부는 자식인 교민을 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각종 보도에 의하면 우리 정부는 사건 초기에 어설프고 안일하게 늑장대응을 했다는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김씨 구출에 무성의한 사이 손도 써보지 못한 채 그는 이미 숨져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납치범들이 김씨를 굳이 살해한 배경에는 김씨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납치범들의 생각은 한국군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침략자인 미국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군 파병의 「평화·재건부대」 명분을 정면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황에서 정부의 추가파병 재확인은 한국인에 대한 납치단체의 표적이 아닐 수 없었다는 짐작이다. 이렇듯 파병 자체가 화근의 뿌리라고 할 때 파병에 대한 보다 신중한 검토가 요망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이번 살인만행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군인도 아닌 무고한 민간인을 참혹하게 살해한 행위는 어느곳 누구에게서도 용서받지 못할 비열한 만행인 것이다.??더구나 시신에 폭발물까지 설치하여 대로변에 방치하였다니 그들 스스로가 최악의 범죄자임을 인정한 셈이다.??아무리 악명높은 테러·납치범이라 할지라도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온 세계인들이 경악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확실한 대응만이 만행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정부는 신속하게 수습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진상과 책임규명은 물론, 파병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를 비롯해 실효성 있는 교민안전대책을 철저하게 강구하는 것이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