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오  (상지대국제통상학부교수)

나는 지난 한주동안 현대건축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의 시카고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이번 여행은 2년마다 미국과 유럽을 번갈아가며 열려왔던 국제문화경제학회의 열세 번째 국제학술대회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고, 필자는 ‘한국영화산업 붐: 경제적, 제도적, 문화적 요인 분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번 여행길은 필자에게 학문적으로도 외국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생동감을 피부로 느끼는 데 있어서도 귀중한 체험의 장이 되었다. 시카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미국 중부에 위치한 제3의 도시, 최희섭이 활약하고 있는 시카고 컵스 야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쯤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시카고를 경험하기 이전에는 대략 그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카고는 바람이 많은 도시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뉴욕보다 더욱 훌륭한 예술문화자산을 갖고 있는 문화도시이자 교육문화의 도시였다.

우선, 시카고에는 시카고대학교라는 명문 대학이 위치하고 있다. 반골 기질이 강한 시카고대학교에는 경제학과 단일학과에만 네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현직 교수진으로 포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 수가 약 80명에 달한다고 하니 시카고대학교의 창의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한라대학교 유오종 교수의 안내로 역사적인 세미나실 등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게 커다란 지적 체험의 장이었다.

시카고는 역시 현대건축의 메카라는 점을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시카고 도심은 세계 제2의 고층 빌딩인 시어스 빌딩을 비롯한 초고층 빌딩 숲으로 뒤덮여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에 세계 최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전에는 세계 제일의 빌딩은 시카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된 배후에는 도시의 열등감이 내재한다. 시카고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시카고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시카고는 1871년에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든 대 화재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조그마한 불씨가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든 것을 보면 이 도시의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재 이후 시카고는 각계의 도움을 받아 초고층 빌딩의 건축을 통한 도시재건에 돌입했다. 여기서 시카고는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예술성을 무시한 단기간의 고도성장을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미를 가미한 장기적인 도시 성장을 이룩할 것인가의 선택이었다. 시카고의 시민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의 이면에는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의 시카고를 만들어냈다.

시카고 여행이 남긴 게 있다면, 우리가 사는 원주도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 플랜을 가지고 도시의 건설과 재생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과 교육(대학)과 경제(산업)의 조화를 이룩하지 않은 도시는 미래도시의 자격이 없을 뿐더러 창의적 도시 이미지가 형성될 수 없다.

원주의 대학과 산업과 문화 및 역사를 통합할 수 있는 발전전략과 실천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향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