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진 언론인


지난 4.15 총선시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전의를 잃지 않고 끝까지 선전해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H형이 전력투구의 보람도 없이 패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새삼 절감케 됩니다. 선거 토론회에서 누누이 밝혔듯이 한번 더하고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용퇴하겠다는 H형의 간곡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치계를 떠나게 되어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H형의 20여년 정치생활의 시종을 지켜봐 온 필자에게도 만감이 교차가 됩니다. 형이 40대 초반의 연부역강한 나이에 정치에 뜻을 두게 된 시점은 원주가 참신한 새 인물의 출현을 고대하던 때였습니다.


60년대 이후 H형이 등장하기까지는 지역의 국회의원직은 모두 외지출신의 도래인들이 차지해 ‘원주인들은 모두 죽었는가?’라는 대내외적인 자조와 각성이 팽배하였지요. 이때 상지대 교수로 귀향한 H형은 원주인의 눈을 번쩍 뜨게 한 희망이요 등불이었습니다. 형을 국회로 진출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형을 도왔죠. 그러나 무소속으로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다음 두번째는 성공으로 결실되어 원주인들의 오랜 숙원인 토종 국회의원을 드디어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변 사람들이 당시의 권력에 밉보여 갖은 불이익을 당했음을 형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필자도 소속사 사장을 통해 수 차례 정보기관의 경고와 협박을 받았으니까요.


형은 국회의원이 된 이후 지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많은 일을 했고, 중앙 정치무대에서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기까지의 길은 물론 순탄치 않았습니다. 남들은 단숨에 한 3선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달성해야했고, 잦은 음해성 흑색소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남들 같으면 몇 번이라도 고향을 떠났을 터지만 H형은 묵묵히 고향을 지키면서 지역민과 애환을 같이했고, 특히 지역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것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형이 “정치를 비켜 살겠다”는 말로 정치계 은퇴를 성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한편으론 아쉽게도 여겨졌지만 잘한 일이라고 굳이 생각키로 했습니다. 그것이 민의(民意)이며 시대의 대세이라면 순응할 수밖에 없잖느냐는 것이지요.


노자(老子)도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잘하는 방법은 물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은퇴결단은 시대의 흐름을 타는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비켜 평상으로 돌아가 가족과 지역사랑에 헌신하겠다는 형의 은퇴의 변 또한 얼마나 멋있습니까? 정치의 속진을 모두 털어 버리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치악산을 닮은 원주의 큰 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오래 전에 소설가 한수산씨가 쓴 제주도관련 글에서 한라산을 닮은 한 제주인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큰 벼슬도, 돈도 갖고있는 분이 아닌 아주 평범함 소시민이지만 덕성, 인격, 처신에서 제주도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 급기야는 그를 제2의 한라산으로 극치화 시키기까지한 것을 봤습니다. 우리 원주도 지금 그런 분이 필요합니다. 경륜, 학문, 인격 등으로 봐 H형이 그 적임자라 여겨집니다.


60년 토종국회의원을 갈구하던 원주시민들은 이제 또한 제2의 치악산 같은 인물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토종의 한을 풀어드렸으니 제2의 치악산도 되어 주셔야죠.


그 동안 살면서 응어리진 것(억울, 분냄, 욕심 등) 모두 훌훌 털어 버리고 허허(虛虛)로운 마음으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합시다.


H형 그 동안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고….


언제 심신이 안정되면 따뜻한 차 한잔 놓고 그 동안 못 다한 이야기나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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