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진<언론인>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국화 옆에서 중). 서정주 시인은 국화 한송이가 피어나기까지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소쩍새의 울음, 먹구름, 천둥의 울음, 무서리 등으로 시어화(詩語化)시키면서 귀하고 값진 것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고 꼭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교훈해 주고 있다.


사실 요즘 같아선 누구나 할 것 없이 어지러운 나라꼴에 장지연선생이 한일합방 뒤 쓴 사설 제목처럼 매일 매일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날은 큰소리내어 통곡한다)하고 싶지만 우리 민족의 양심과 저력이 이 난국을 기필코 극복하여 좋은 새나라를 만들것이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에 터져나오는 울분을 참고 내일을 기약해 본다. 마치 서정주 시인이 천둥, 무서리속의 오랜 기다림 끝에 국화 한송이를 꽃피우듯 말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북해 청어잡이 어부들에게는 잡은 청어를 런던 시장까지 산채로 운반하는 것이 잡는 것보다 더 큰 문제였다. 갖은 방법을 써 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 어부만은 산채로 운반해 많은 돈을 벌고 있어 그 비결을 물었더니 “자기는 청어통에 메기를 한 마리씩 넣어 청어로 하여금 잡혀 먹히지 않도록 도망치게 해 거의 전량을 산채로 내다 팔고 있다”고 했다.
물론 손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런던까지 오는 동안 기껏해야 두 세 마리 정도만 메기의 먹이로 주면 된다는 것. 고난이 도전과 응전을 유발하여 더욱 강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해 줘 전혀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는 비탄과 울분, 분노의 늪에서 박차고 일어나 다시 도약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저마다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앉아서 한탄하고 불평만 한다고 잘못된 일이 바로 잡혀 질리도 없고 우리 대신 누가 맡아 해결해 줄리도 없다. 결국 우리가 저질로 놓은 일이니 우리가 풀어 갈 수밖에…. 아무리 지구촌 사회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지배하는게 국제관계가 아닌가. 약체 약자는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엄연한 교훈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시련을 도전과 응전의 기회로 삼아 더욱 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여기서 주저 앉는다면. 우리는 내일이 없는 민족이 될 것이 자명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말은 침체, 분열, 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벌써 자멸의 문 앞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지도자와 모든 국민에 이르기 까지 당리당략, 정치전략, 개인이해를 떠나 깊은 반성과 새로운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조용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왜 우리가 이지경에 왔는지 사색에 빠져보자.


여지껏 우리는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큰소리 쳐 왔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사색의 결실들을 놓고 조용하고 다정한 어조로 가슴을 열어 이야기 해보자. 그래서 우리의 전통 건축기법인 “그랭이” 공법처럼 상생의 세상을 만들면 어떨까? 기둥을 세울 때 우리 선인들은 울퉁 불퉁한 주춧돌의 요철에 맞춰 기둥 밑 부분을 깍아내 건축물의 안정을 도모 했는데, 나라 운영도 이런 식으로 한다면 붕괴되거나 기웃둥 거릴 일이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물론 기둥은 나랏일 이고 주춧돌은 국민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 개신교의 원로이자 한국기독교 청년회(YMCA) 산 역사인 전택부(90) 서울 YMCA명예총무는 얼마전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모두들 자기자신, 가족, 주변보다는 멀리 떨어진 큰 것만 좇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고함 질러서 일어나는 역사나 문화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자신을 조용히 돌아봐야 할 때 주신 원로의 적절한 경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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