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오(상지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이 말은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국내 언론사 베이징 주재 특파원과의 오찬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 것이다. 이 발언으로 이전까지 정부영 회장의 대선 출마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던 삼성과 YS 정부와의 밀월 관계가 끝난 것은 물론이고 이후 삼성은 YS 정부로부터 커다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우리는 지난해부터 신물이 날 정도로 수많은 정치 공해에 시달려 왔다. 신문 지상에 발표되는 정치인들의 수뢰 금액이 검찰 발표와는 달리 실제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언제까지 이런 정치 공해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정치의 계절은 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총선이 임박했다. 요즈음, 다양한 정파에서 수시로 여론 조사라는 미명 하에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거는 관계로 조용히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어렵게 되었다. 마치 정치와 관련된 여론 조사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시민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아도 된다는 듯이.


우리는 총선을 통해 4년이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번 총선에서도 기존의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정치 신인들이 새로운 포부를 안고 우리들에게 수많은 공약을 토해 낼 것이다. 자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이런, 저런 지역 현안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또, 자신만이 가장 도덕적이고 청렴한 사람이라는 둥.


과연, 정치는 필요선인가? 필요악인가?


오늘날처럼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생활을 영위해야만 하는 시만의 입장에서 정치는 필수 불가결한 공공재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필요선은 아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필요악이다.


일찍이 옛 성현들은 가장 이상적인 정치란 공기와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이상적인 정치와는 너무나 다르다.


최근 정치권 내부에서도 다양한 정치개혁 관련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우리들의 바람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오늘날 한국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정립은 정치의 세계에도 경제 논리를 도입하는 것에서 출발하자.


정치라는 무대 역시 일종의 시장이다. 정치가는 정치라는 상품의 공급자이고, 유권자는 정치라는 상품의 소비자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질 좋은 상품을 생산, 공급하는 공급자만이 살아남게 된다. 정치라는 상품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는 자만이 살아남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이 필수적이다.


일상적인 소비 생활에서 소비자들은 상품의 가격, 질, 내구성, 디자인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산하는 기업의 환경, 문화 및 윤리 수준 등을 감안하여 상품을 선택하듯이 정치 시장에서도 꼼꼼하고 세심한 선택이 요청된다. 정치가 개인이라는 상품은 물론이고,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해당하는 정당의 비전과 지향을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정치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안 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니고 정치인이다. 정치시장에서 소비자주권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소비행위에 참여하는 것 뿐이다. 투표 참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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