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선[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등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봄에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치악산을 찾지만 아직 비로봉 꼭대기까지는 올라가 본적이 없다.
산에 가면 꽃 하나하나에 말을 걸고 나무와 눈 맞추고 작은 벌레의 움직임도 유심히 지켜보느라 도저히 정상까지 갈 수가 없다. 산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사람마다 산행하는 모습은 다른 것 같다.

내가 산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 꽃과 나무와 벌레들이 살고 있어서이다. 고요한 숲과 계곡에 나도 자연으로 깃들이고 싶어서이다. 그러다보니 정상을 빠른 시간에 정복(?)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도 한때는 산의 정상을 밟고 완주해야만 산엘 갔다 왔다는 뿌듯함에 계속 새로운 산을 도전하듯이 올랐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상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산에 오르도록 허락한 산의 주인들에게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고 더불어 산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내가 하는 일이 자연해설가이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생태체험을 위해 산을 찾는 일이 많다. 아이들은 숲 속에서 오감체험을 하고 계곡물 속에 사는 수서곤충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개구리와 도롱뇽, 뱀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요즘처럼 곤충들이 많은 여름에는 곤충을 채집해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은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듯이 산을 찾을 때도 거기에 사는 생물들에게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산에 가면 산의 주인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쉽게 꽃을 꺾고, 나뭇가지를 분지르고 계곡의 돌을 옮기고 던진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야호’하고 소리를 지른다. 단 한번도 꺾이는 꽃이나 나무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없고 돌 밑에 집을 짓고 사는 물 속 생물들의 집이 한 순간에 부서져버림을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시원스런 `‘야호’소리가 새들의 짝짓기를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새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얼마전 `도롱뇽 소송’으로 유명한 천성산 터널공사 금지를 위한 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많은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4년여를 싸웠지만 이제 천성산에는 13·5km의 관통 터널이 뚫리게 되었다. 자연물인 도롱뇽은 자신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서 소송당사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말 못하는 도롱뇽을 대신해 싸움을 자청한 `도롱뇽의 친구들도 소송주체로 인정받지 못해 법정 밖으로 밀려났다. 많은 사람들에겐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대법원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어찌 사람의 이익을 일개 자연물이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천성산의 주인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자연이다.

법(法)이란 물(水)이 흐르는(去) 모양을 말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를 인간사회에 적용한 것이 바로 법이라는 뜻일 게다. 강원도는 요즘 유례없는 수해로 도민 모두가 시름에 빠져있다.

정부는 수해복구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수해의 원인이 무분별한 난개발 특히 산을 절개해 도로를 만들고 터널을 뚫은 것에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제발 더 늦기 전에 개발론자들은 자연이 살 수 없는 지구는 인간도 살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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