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도시 원주’ 시민이 지켜내자

일본 에스생협 ‘2006 비누방울포럼’에 다녀와서

지난 4월 21일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긴장감이 한창 고조되어있는 가운데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4월 22일부터 이틀간 오사카 센보쿠 지역의 에스생협에서 열리는 ‘2006 비누방울포럼’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에스생협을 비롯하여 환경과 생명을 소중히 하는 철학을 가진 일본의 생협들은 지난 30년간 합성세제를 대신하여 비누를 사용하자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소비패턴으로 아름다운 강과 호수가 오염되고 물고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협 조합원들의 모임이 결성되었고, 다양한 논의의 과정에서 간단한 실험을 통해 합성세제가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연소재로 만들어진 비누는 쥐가 먹어도 탈이 없고, 비눗물에는 금붕어를 풀어 놓아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인이나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합성세제가 미량이라도 포함된 물에서는 금붕어가 살지 못하였다.

생협 조합원들은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기업의 합성세제 사용을 반대하고, 천연물질로 만들어진 비누를 사용하자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러한 운동을 하고 있는 전국의 생협조합원들이 서로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생활협동조합 비누운동 연락회’를 결성하여 비누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켜내기 시작하였다. 20년 전의 일이다. 이러한 전국적인 비누운동을 매년 평가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좋은 사례들을 함께 나누기 위한 자리가 바로 비누방울포럼인 것이다.

‘2006 비누방울포럼’에는 일본 내 30여개의 생협단체에서 700여명의 여성 조합원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포럼의 주제도 단순히 비누사용을 늘리자는 것을 넘어서서 환경과 생명을 소중히 하는 지역을 만들자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포럼의 주제도 ‘환경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하여 지역을 새롭게 창조하자’는 것이었다. 발제를 맡은 지가현 환경생협의 후지이 아야코 이사장의 사례발표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 비야코 호수변에 위치한 지가현은 비야코의 생태계를 보전하고자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수십년 전에 이미 비누조례를 결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공생적 사회를 만들고자 독일의 생태운동가들과 협력하여 바이오 에너지 운동을 펼쳤는데 그 결과로 환경생협이 위치한 마을은 유채꽃 기름과 폐식용유로 자동차가 다니고 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교토에서 열린 지구환경회의 이후에 일본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비야코 호수 북부지역에 20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건립을 막으려면 시민들 스스로 대안에너지의 사용방안을 찾아야 했다.

지가현 주민들은 환경생협을 중심으로 대안에너지 운동을 펼친 결과 유채꽃 기름을 디젤 연료로 사용하는 독일의 생태기술을 지역사회에 접목하게 된 것이다. 또한 비누운동으로 폐식용류의 수거율이 높아졌는데 이 폐식용류도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유채꽃 기름을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 운동은 농업을 포기하던 농민들에게도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유채꽃을 재배하면서 자동차 연료뿐 아니라 유채꽃 기름을 이용한 다양한 식품도 개발되어 농민들의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었고 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유채꽃 단지로 변화하면서 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고 한다.

대도시로 떠나던 지역의 청소년들은 지역에서 살아가고자 농업학교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민의 힘으로 지역순환형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고 한다. 합성세제를 생산하는 일본의 3대 기업들이 연합하여 지가현의 비누조례를 폐지하고자 로비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운동이 더욱 확산되었을 때 기업의 수익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책입안자들도 경제논리를 내세우며 유채꽃 기름을 브라질 등에서 수입하면 더욱 싼 바이오 에너지 이용이 가능하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럼의 끝자락에서 일본의 참여자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수십년간 이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전문인이라는 교수, 과학자들의 도움을 구했지만 그들은 NHK방송에는 출연할지언정 우리들의 활동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정부도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문제의식을 지닌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 공부하며 대안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원주를 생각해보았다.

난개발로 급속하게 훼손되어 가는 원주, 결국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갈 사람들의 결단과 지속적인 실천만이 생명의 도시 원주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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