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인 ‘비탈’ 네번째 시집출간을 보며
시동인 비탈이 엔솔로지 ‘다시 이 자리에’를 출판했다. 그들로서는 통산 네 번째에 해당하는 동인시집이다. 시집의 날개에 따르면 이들은 1986년에 결성되어 그동안 시전, 낭송회, 시집 출판 등의 활동을 펼쳐왔고 여섯 명의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21년의 역사를 지탱해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원주에는 토요시, 시치미 같은 소집단 시동아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갑자기 비탈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나의 과문벽도 있겠지만 21년의 동인역사를 통과해오면서 비탈이 보여준 문학적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비탈의 문학적 태도는 비체제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즉, 문학제도의 일반적 관행 밖에서 자족적으로 자신들의 시를 키워왔다는 점이 그들을 비체적이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다. 그러니 등단과 같은 인정 기제와도 무관히 그들의 문학활동은 지속되어 올 수 있었다고 본다.
비탈동인의 시집을 떠받치고 있는 관심사를 하나로 단순화시켜 관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섯 명의 동인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시적 관심들은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지만 그러나 또한 단단한 정신적 기반이 동인들을 가로지르고 있음도 확인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오랜 동인역사를 통해 얻어진 인간적 결속력과 문학적 관점의 조율에 의지하는 덕목이다. 문학이 변두리문화로 이행되는 가운데 창작의 주체도 여성의 손으로 넘어가는 추세 속에서 중년 남성만으로 시업을 유지해온다는 그것만으로도 기이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것도, 혁신도시 원주시에서!
주마간산의 시각으로 볼 때, 비탈의 공통 관심사는 삶, 자연, 역사라는 항목으로 집약된다. 이와같은 문학적 방향은 비탈의 소유가 아니다. 문학의 일반적 지향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인들 각자의 시세계 안에 삶에 대한 일반성이 특별하게 형상되고 있음은 전적으로 비탈 고유의 영역이다.
나는 이 점을 주목한다. 시에 대한 오랜 열망은 곧 삶에 대한 그것일 것이고, 그 삶의 내부에는 자신들이 통과해온 역사적 맥락들이 든든한 지층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비탈은 경망히 나대지 않는 침잠과 겸손을 자랑삼으며 삶의 내부를 성찰하는 뜨거운 시들을 보여준다.
나는 이번 시집을 통해 원주를 원주답게 떠받쳐줄 여섯 명의 남성 시인을 본다. 시집 표지에 얼굴 윤곽이 지워진 네가 필름으로 인쇄된 여섯 명의 포즈. 김준한, 서경식, 이문성, 임영만, 박승수, 최정룡. 부드럽고 따뜻하며, 명민하며 웅혼한 육인조 남성 코러스에서 터져나오는 중년의 저음들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박세현(상지영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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