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7월부터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가정폭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1996년 11월 개소 이래 현재까지 2513건의 본 상담소 건수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근래의 가정폭력 급증 원인은 어려운 경제난에 따른 가족구성원간 갈등의 증폭에 있다.
폭력의 수위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한 30대 주부는 남편 폭력에 못이겨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르던 가장을 부인이 찔러 죽인 일도 있는가하면 올해초 연예인 이모씨가 남편에게 야구방망이로 맞아 중상을 당하고 이혼했다.
이는 우리 가정들이 가정폭력에 얼마나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처럼 폭력이 심각한데도 대책은 미흡하다.
피해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제도가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가해자에 대한 구상청구권이 의료비 지원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이 가볍기 때문에 재발방지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구속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원치 않거나 폭행 증거가 없으면 처벌이 어렵기도 하다. 가벼운 훈계 정도로는 별 소용이 없는데도….
가정 폭력 발생시 피해여성을 따로 보호해 구제하고, 가해자에게는 가해자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아직 느슨해 보인다. 경찰신고시 ‘가정문제니 알아서 하라’며 돌아가는 경찰관이 이제는 많이 줄었으나, 정부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가정폭력은 단순한 ‘남의 가정일’이 아닌 엄연한 ‘사회적 범죄’이다. 피해 당사자와 자녀 등 가족구성원에게 심한 후유증을 남기고 가족해체 등 여러 부작용을 가져온다.
정부는 가정폭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한편, 올해에는 신문과 뉴스에 성폭력에 관한 보도가 참 많았다.
내무반 고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다가 휴가 복귀 전 자살한 병사, 논문 통과 여부를 빌미로 제자를 성추행한 대학교수, 어린이를 성추행한 성직자, 의붓아버지로부터 13세부터 성폭력을 당해 오다가 아이를 출산한 15세 소녀, 며느리를 성추행한 시아버지 등.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내에서 성폭력이 만연하고 있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중 가장 위험한 것이 성폭력은 낯선 사람으로부터 많이 겪고, 젊은 여성만이 피해의 대상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담소의 통계를 보면 낯선 사람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불과 20%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신문지상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아는 사람에게 당한 성폭력이 대부분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성폭력은 개인의 치부(恥部)라고 생각하거나 고소를 하면 주위에 알려질 것을 걱정하여 신고하지 않고 혼자서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을 표면화시킴으로 해서 겪는 제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당한 대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의 끔찍한 상황에 대한 반복답변을 유도하고, 피해자에게 의무적인 법정 출석을 요구하는 등 수사나 재판과정에서의 피해자 불만은 날로 높아지고 있으며 이중출석 방지가 필요하다.
또한 아동 성폭력의 경우 비디오 녹화에 의한 증인심문 과정이 인정되어 피해 아동의 법정 출석이 없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가정폭력·성폭력은 인권측면에서도 중대한 사안인 만큼 사전 교육과 예방도 필요하다.
가해자 명단 공개, 가해자 교육 등 더욱 적극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나에게만은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여전히 내 주위에 가정폭력·성폭력으로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 정부의 대책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지만 우리가 그 여러 힘을 모으면 좀더 개선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김혜란 원주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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