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학습 감독비 수령 거부’에 대한 단상



얼마 전 일요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 프로그램의 마지막 문제의 답은 ‘성호 이익’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학부모가 주는 자율학습 감독비 수령거부’에 대한 답 역시 ‘성호 이익’이었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은 만년에 시골에 은거하며, 생활 주변의 사물을 보면서 느낀 생각을 그때그때 적어 두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물을 바라보는 법」이란 책이다.
내가 요즈음 읽던 책(정민, 한시 이야기, 보림) 한 귀퉁이를 접어놓았는데, 그 부분을 인용하면 대체로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야생 거위를 잡아서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많이 주니까 거위가 금세 뚱뚱해져서 날 수가 없었다. 그 뒤에 거위가 문득 음식을 먹지 않았다.
기르는 사람은 거위가 병이 난 줄로 알고 먹을 것을 더 많이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도 거위는 그 음식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거위의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아! 거위가 참 지혜롭구나. 자기 자신을 잘 지켰다.”’

야생 거위는 말 그대로 ‘야생’이니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않을 게다. 그런데 사람이 이것을 주니까 거위는 멋도 모르고 맛있게 받아 먹었다. 그 결과 거위는 뚱뚱해져서 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거위는 열흘을 꼬박 굶어 자유롭게 날아가 버렸다. 만약 거위가 눈 앞에 던져진, 불에 익힌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계속 받아 먹었다면, 더 뚱뚱해져서 영영 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주인은 그 거위를 어떻게 했을까? 잡아서 맛있게 요리해 먹었을 것이다.
야생 거위 이야기를 들은 이익 선생은 그 거위를 보고 지혜롭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선생은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세상에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남이 주는 옳지 못한 음식을 날름날름 받아 먹어 살을 찌우다가 마침내 자기 몸을 망치고 마는 ‘사람 거위’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히려 거위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선생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여!
결국 나는 나조차 감독하지 못하면서 감독비를 받았구나. 스스로를 감독하는 삶을 가르치지 못하고, 감독에 곧잘 순응하는 아이들을 기특해 했구나. 거위여! 스스로를 감독하여 자유롭게 나는 지혜를 얻었구나. 나여! 옳지 않은 줄 알면서 옳지 못한 것을 날름날름 받아 먹으며 자기 합리화하느라 고생 많았구나.

<00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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