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은(부부의원 원장)

나는 평소 구두 닦는 일이 없고 기껏해야 큰 행사나 있을 때 가끔 먼지만 털어 낼 정도다. 또 한번 구두 사면 밑창을 한번 갈고 보통 10년 이상은 신고 다니는 것 같으니,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구두닦이나 구두장사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구두만이 아니고 옷도 한 번 사면 헤져 입지 못할 때까지 입으니 집 사람에게 자주 잔소리를 듣는 편이고 이제는 아예 포기하고 그런 사람으로 굳어져 버린 상태이다.

차도 물론 거의 세차를 안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뽀얗게 먼지가 쌓인 구두를 신고 유행 지난 옷을 입고 흙먼지가 지저분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이제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요새 나의 구두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내가 보기에도 내 코드와 맞지 않아 어색할 정도다. 얼마 전에 노동부 지원 사업의 하나인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갈거리사랑촌의 원주노숙인센터에서 구두닦이, 출장간이 세차, 재활용판매, 쌀가게 등의 일자리가 생겼다. 우선 연습용으로 내 구두를 닦은 것이다.

4월부터는 정식으로 한켤레에 1천원씩 받는다. 국가적인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새로운 일자리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원주노숙인센터에서는 지난 2월 노동부로부터 원주지역 노숙인과 빈곤층을 위한 일자리 사업으로 10명의 인건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대량실업으로 국민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또 대상자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기술이나 능력도 없고 빈곤층이나 노숙인들로 무능력한 사람 등의 편견이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구두닦이, 출장간이세차, 재활용품 판매, 쌀가게 등의 일자리가 일반 사회에서는 이미 인기가 없고 힘이 들어 하기 싫어 하는 일들이고 어떻게 보면 우습고 하찮은 일들로 보일 수 있다.
노숙인 쉼터나 쪽방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그동안 일자리 구하러 집을 나왔다가 못 들어가거나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작고 우스운 일거리가 이들을 활기찬 희망의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십시일반 무료급식소 입구 에 있는 재활용품 판매장에서 1천~2천원짜리 깨끗하게 정리한 중고물품들을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선배 구두닦이에게 구두 닦는 법을 배우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차밖에 없다며 신나하는 모습, 먼 거리도 즐겁게 오토바이를 타고 쌀 배달 다니는 모습들이 그것들이다.

오늘도 풍물시장에서 사람들 속을 헤쳐 나와 원주천변을 걷는다. 봄 햇볕아래 유난히 빛나는 나의 반짝 구두를 보면서 이런 작은 사업들이 이들에게 절망과 빈곤 속에서 빠져나와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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