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원주선언을 준비하자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당당히 맞서 일어섰던 ‘원주선언’이 올해로 30돌이다. ‘원주선언’은 부도덕한 정권을 몰아내고 우리나라에 올바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폭제가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원주선언’은 소수 재야운동가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준비된 것이 아니란 점에 큰 의미가 있다. 1976년 1월 지학순 주교에 의해 역사적인 ‘원주선언’이 있기 수년 전부터 이미 원주를 중심으로 한 원주교구 관할지역(영월, 평창, 정선, 태백 등의 강원남부지역)에서는 ‘선언’이 담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민초들과 사회운동가들이 협력하여 일구어낸 협동조합운동이다.
1960년대 후반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지역자립의 경제를 이루고자 주민들과 함께 시작한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호응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성장하였다.
지역 주민들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소비조합을 만들었으며, 농민들은 작목반과 협동조직을 만들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개선해나가는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협동운동은 낙후한 탄광지역에도 전파되어 절망에 빠져 있던 탄광 노동자들이 다양한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권리를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원주의 협동조합 공동체운동은 전국으로 파급되어 나가기 시작하였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여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노골적으로 정치적 탄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에 군사정권의 폭압에 저항하여, 인간다운 사회를 선포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바로 ‘원주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주선언 30돌을 맞이하여 근래 원주시의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얼마 전 원주시는 기업도시에 이전하는 100인 이상 고용 기업에 50억원의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발표 하였다. 지역에 기초하지 않고 단지 외부의 효과만으로 성장할 경우 결과적으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원주의 경우도 이마트와 같은 대형마트의 유입이 저임금의 비정규직 파트타임 여성노동자들만 양산하였고, 오히려 재래시장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온 경험이 있다. 과연 기업도시에 정책자금과 특혜로 입주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몰락하는 재래시장 서민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각 기업의 경제적 수익이 얼마나 지역사회에 환원될 것인지 의심스럽다.
스웨덴 정부와 지방자치는 지역중심의 안정된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하여 각 지역마다 협동조합 정책연구소를 설립한 바 있다. 시민들의 기업인 협동조합의 성장과 신규사업의 창출을 지원하고 그로써 새로운 고용을 만들어내는데 협력하여 지역경제의 안정화를 이루었다.
안타깝게도 원주시는 시민들의 지역은행인 신용협동조합이 지난 30년동안 시민들의 노력으로 4천억원의 자산을 축적하고, 지역주민을 고용하고, 서민들의 경제적 안정과 복지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동안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원주지역의 농민과 소비자들이 전국에서 주목받는 친환경농업단지를 만들고,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전국에 전파하게 된 오늘날까지 이러한 인프라를 기초로 식품가공 등의 새로운 사업을 입안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고, 지역고용을 창출해볼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무슨 기업도시를 운운하고 지원을 말하는가.
혁신도시의 문제도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30년 전 원주의 사회개발운동은 결코 원주시의 발전만을 모색하지 않았다. 낙후한 강원 남부지역 전체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생활을 개선하며, 서로 간의 조화로운 성장을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늘 원주시는 혁신도시 선정을 선전하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원주시의 급격한 비대화로 인하여 자칫 강원도의 저개발 지역들이 인구가 줄고 공동화될 우려에 대하여 어떻게 함께 대안을 찾아낼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강원지역의 분열과 지역별 양극화를 막을 수 있다.
농촌지역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재래시장의 몰락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오늘날 진정 원주시는 무엇이 지역을 살리고 지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책인가에 대하여 ‘원주선언’ 30돌을 맞아 재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개발에 편승하여 연구비와 지원금을 따내려는 욕심에 지역의 현실과 동떨어진 개발 프로젝트 등을 입안하고 있는 원주지역 일부 대학들의 관행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의 대학이라면 지역의 역사와 현실, 지역주민을 중심에 둔 미래상을 제시하고, 지역주민들의 현실적 고통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시민들이 외면하게 될 것이다.
오늘 원주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까 염려가 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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