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성 (연세대 법학부 교수)

지난 목요일 오후 원주시청에 가보니 입구 도로변이 부서진 천막, 스티로폼, 판자조각 등으로 어수선 하였다. 그 전날 오후 청소 업체가 기습하여 50여일째 농성하고 있던 원주시 공무원노조 농성천막-이것도 ‘주거‘다-을 파괴한 흔적이었다. 아마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꼴보기 싫은 해직공무원 농성천막을 강제 철거하려했던 모양인데 도리어 더 튼튼한 새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세상의 인심은 냉혹하여 원주시 공무원노조의 파업과 천막 농성은 실업자 넘치고 장사도 안되는 이 판국에 ‘배부른 공무원들의 철없는 투정’이고 따라서 정부의 강경대응은 당연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정권보다 전향적으로 공무원에게 단결권과 단체 교섭권까지 주려는 마당인데 노조가 쟁의권까지 달라고 하는 것은 집권당에서 볼 때도 ‘전술적 배신’ 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또 하려면 화끈하게 하든지 아니면 애초에 말든지 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더해지니 공무원 노조는 사면초가(四面楚歌), 호소할 데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비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공무원노조 파업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공무원들의 이기심이나 경제상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민주주의ㆍ법치주의의 회복 차원의 문제다. 어째서 비교적 안정되고 고학력집단인 공무원들이 쟁의권을 요구하고 불법파업까지 감행하였는지 그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분명히 월급쟁이 노동자고 따라서 노동3권의 주체이다. 이것은 우리 헌법의 정신이자 외국의 입법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직종에 따라 3권을 다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인정하는 것이 노동법발달사 100여년 이래의 세계적 실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61년 군사 쿠데타 이후 공직노동자의 노동3권이 원칙적으로 박탈-특별권력관계와 위기정부라는 이유로-되어 버린 것이 오늘의 사태의 뿌리이다. ‘공무원은 기본권을 국가에 반납했다’는 이 강제적 허구의 진실규명과 원상회복 작업이 바로 이번 공무원 파업사태의 본질이다. 요컨대 공무원 노동3권 쟁취투쟁은 잃어버린 민주ㆍ법치주의와 정상적인 헌법의 회복운동일 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공무원들의 의도적인 현행법 위반행위는 일종의 저항권의 행사 내지 정당방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정법은 우리 모두가 당연히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것을 악법(惡法)이라고 한다-일 때에는 국민에게 정당 저항권이 있다. 올바른 저항권의 행사와 정당방위는 모든 법적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역사적 배경과 법적논리가 이러한데도 원주시는 공무원 파업 사건 이래 감정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전국 최고 395명의 파면, 직위해제, 정직 등에 이어 노조 사무실 폐쇄로 일관했는데 이것은 예상을 뒤엎는 과격반응이었다.

징계 책임자로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것은 아니지만 시장과 간부들은 명심하라. 1970년대 노동자 착취, 1980년대 전교조 탄압의 정산서(精算書)를 보라. 누가 옳았는가? 지금의 공무원노조 징계파동은 역사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공무원들의 파업은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엄벌해야 할 정도의 죄질은 못되는 것이다. 파업기간중의 심각한 행정마비사태도 없지 않았는가? 공무원 사회가 그 정도로 무책임하지는 않다. 법치 법치하는데 법 위에는 인간세상의 어떤 도(道)랄까 순리(順理)랄까 하는 것이 있다. 현실의 법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김기열시장은 아침마다 부인의 구두만 닦아 줄 게 아니라 징계당한 395명 원주시 공무원 그리고 그에 딸린 식솔(食率)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그것도 빨리. 강공(强攻)은 이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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