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공간 많을수록 활기 넘쳐

최재석 원주녹색연합공동대표 (한라대 건축학부 교수)

얼마전이다. 무릎이 아파 고생한 적이 있다. 은근히 쑤셔오는 통증에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버티다가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어 봤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통증에 주사와 약복용, 그리고 물리치료를 받아도 별 효과가 없었다.

간이 침대에 누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오십도 안된 나이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혹시 골다공증 아니면 관절염? 성급한 마음에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번갈아 가며 치료를 받던 중에,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기적의 걷기 치료법 530’이라는 특집을 다룬 적이 있었다. 여기서 ‘530’이란 일주일에 다섯 번 매번 30분씩 걸으면 모든 질병이 치료된다는 황당한 얘기같은 것이다.

평상시 걷기에 대해서 재미도 없고 단순해서 운동이 될 것 같지 않아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과학적으로 소개된 프로그램에 매료되어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걷기를 시작한 것이, 이젠 시간만 있으면 걷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도 없고 해서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걷기의 시작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앞산을 새벽에 한 바퀴 돌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식사를 한 다음 농로를 지나 흥업천 뚝방을 쭉 걸어서 되돌아오는 정해진 코스를 만들어 시간만 되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걷기를 시작한지 3개월쯤 지났을까, 아픈 다리가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는지 아니면 걷기를 통해서 나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우선 기분이 좋았다. 걷기로 인해 통증이 사라졌다는 좀 근거없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하곤 하여, 걷기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중앙로 차없는 거리’를 만들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걷기를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시민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단서(端緖)로 접근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시민들로부터 ‘원주는 볼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런 의견은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 안에서의 느낌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심은 다양한 인자로 구성되어 있어, 도심공간이 시민들을 받아주지 못하면 시민들로부터 외면 당할 수밖에 없다.

원주 도심은 건물, 자동차, 가로시설물, 노상에 주차된 차량, 그리고 상점의 물건들로 시민들이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도심이 자동차보다는 사람위주로 바뀌기 위해서는 걷고 싶은 공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예술·문화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2003)에서 “도시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적을수록 도시는 더 두렵게 느껴지며,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을수록 도시는 정말로 외롭고 위험한 곳이 된다” 라고 하였다. 차없는 거리를 단순히 차없는 거리가 아닌 걷고 싶은 거리로 생각한다면,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도시공간이 두렵다든가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이 아닌 진정으로 도시를 이해하게 되고, 걷기를 통하여 시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게 함으로서 원주 도심은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또한, 프랑스의 역사철학자인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2000)에서 빠름이 미덕인 현대생활에 한가로이 거닐기를 강조하면서, “도시에 꼭 필요한 것이 어떤 요소들인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서 관심만 가졌더라도…, 그 도시의 여기 저기를 한가로이 거닐어 보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도시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만 가졌더라도…” 하는 아쉬움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시행착오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원주 도심에 한가로이 걷고 싶은 공간이 많을수록 시민들은 여유를 갖게 되고,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걷고 싶은 원주를 만들자!

맘놓고 걷다보면 즐거움이 있고, 잃었던 건강을 되찾으며 사람들 사이에 만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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