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무엇보다 담배 좋아하는 애연가


나는 담배와 인연을 끊은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왕 골초이신 아버지 때문에 내 입으로 담배를 태우지 않을 뿐 온 몸에 담배 연기가 배어 있어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담배 냄새는 다른 이들보다 유난히 더 독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스무 살 넘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용케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편을 만나 담배와의 전쟁은 사라졌다.
아버지의 50여 년 담배경력 덕분에 도라지 담배가 있다는 것은 물론 도라지를 넣었기 때문에 도라지 담배라고 이름 지었다는 기가 막힌 정보도 입수했다. 더 재미난 것은 많고 많은 민요 중에 도라지타령 노래만큼은 나는 무척 잘 한다.


아버지는 옷이나 관광 따위는 관심 밖이고 담배를 선물해야 제일 좋아하신다는 것도 알아 차렸다. 어머니께 드리는 풍성한 선물 뒤에 언제나 담배 한 보루를 끼워 넣고 큰 선물을 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왔다.


아버지는 일평생 술은 한 잔도 안 드시지만 하루에 담배 두 세 갑을 능히 피우시는 담배 기술자다. 명절 땐 대구를 다녀오시면서 제천 딸네 집을 지나치신다. 우리 집에 도착함을 알리는 팡파르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너머’. 온 동네 사람들의 정신이라도 깨우듯 요란하게 울려대면 이웃 사람들은 한 순간에 우리 아버지가 오셨음을 다 알게되는 시스템이 돼버려 서로들 “전우의 시체가 왔어” 하며 웃어댄다. 그 울림은 젊은 시절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받으신 무공훈장이 주는 영웅심, 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며 사모곡이자 옛 전우들에 대한 그리움이였다.


내가 놀라 아버지를 야단하면 아쉽다는 듯이 음악을 멈추게 하신다.

들어서자 괜히 바쁘다며 서두르시는 아버지는 여유 있게 밥상 한번 받으시지 못하시는 성격에 여든이 한 해밖에 기다리지 않는데도 젊은 시절 용감한 청년용사 같이 씩씩하고 부지런함을 티 내신다.

이때 빨리 대접할 수 있는 신속한 방법은 그저 담배 한 보루가 최선이기에 아들녀석을 내몰아 담배 사올 것을 타이르고 서두시는 아버지를 못 가시게 지키고 있는데…. 아이가 모퉁이를 돌아오는 동안 차는 이미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너머’는 저만치 가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도라지 담배 한 보루가 아닌 한 갑만 달랑 들고 서있다.


어느날 한번 만나 수다나 떨자는 동창들 요청에 의해 친정 나들이까지 이어져 버림받았던 담배 한 갑도 나의 소지품 행렬에 동행하는 영광을 우리게 되었다.


직행 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에 올라타 요금을 내기 위해 동전의 행방을 찾는데 요 맹랑한 담배녀석이 나 여기 있어 하며 폼재듯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인사하고 있다.


이제 많은 시간들이 지나쳐 갔지만 그때 푼수 끼를 발동해 ‘나 담배 안 피워요. 이 담배 우리 아버지 갖다 드릴 거예요’ 하고 소리라도 냅다 질렀더라면 차라리 더 너 나을 뻔했다는 후회가 아직도 크나큰 앙금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타인들 핸드백 속에 들어있는 담배를 보고 그들을 비난 해왔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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