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보다는 배려를 지식보다는 지혜를 배우는 아이들

방과후 교실 솔숲생명학교

학부모 10여명 공동 출연 지정면에 설립

동네 나들이 등 주제가 있는 놀이학습 실시


대부분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방과 후 생활은 학원에서 시작해 학원으로 끝나는 ‘학원순례’다. 내 자녀는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도 사실 특별히 달리 선택할 게 없는 것이 우리 교육의 답답한 현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에게 이 문제는 보다 심각해 이들은 교문을 통과한 내 아이를 자기 자녀 돌보듯이 봐주고, 아이도 혼자서 학원을 옮겨 다니는 처량함을 면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달려갈 태세다. 그래서 ‘숲속생명학교’ 엄마들은 복 받은 엄마들이다.


이 학교는 지정면 신평리 문화마을에 사는 맞벌이 부부의 초등학생 자녀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이다. 학교 경영은 이 학교 학생들의 부모 8명이 공동으로 하고, 교육은 솔방울 이현주씨가 전담하고 있다.


예쁜 통나무 주택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문화마을 한쪽에 놓인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열댓명의 아이들과 3명의 교사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무언가를 만드느라 시끌시끌하다. “선생님, 이것 좀 붙여주세요. 잘 안 돼요.” 벌써 여러 번을 붙였는데 자꾸 떨어지는지 아이는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선생님이 넘겨 받은 것을 자세히 보니 ‘집’이었다.


조금 어설퍼보이긴 해도 솔숲생명학교 아이들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동네 나들이를 하며 집을 직접 구경했고, 본 것을 그렸고, 나름대로 집 내부 평면도까지 그려 보았다. 솔숲생명학교 미술 수업에 출강한 최정순 깨비클럽 원장선생님은 어린이들과 앉은뱅이 책상에 같이 앉아 창문을 뚫고, 침대를 붙이고 있다.


“이런 모양을 보면 이런 그림, 저런 모양을 보면 저런 그림이 나옵니다. 한정된 자기 머리 속에서만 나오는 그림이 고정 관념이죠.” 이 학교 미술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지난 달 마련한 이 보금자리는 아이들의 아빠, 엄마가 구슬땀 흘려가며 직접 지었다. 화장실, 벽화, 도배, 평상, 잔디 등 어느 것 하나 남의 손 빌지 않고 직접 했다.


그래서 숲속생명학교는 이들에게 제2의 집이나 마찬가지다. 이현주 선생은 “방과 후 아이가 학원을 전전하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던 마을 부모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체험하면서 경쟁보다는 배려, 지식보다는 지혜, 기술보다는 환경, 나보다는 우리를 소중히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던 중에 이 학교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학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 선생은 YMCA에서 15년간 유아, 어린이 프로그램을 전담한 교육전문가. 마을 주민들의 공통된 욕구가 있었고, 마침 교육전문가가 한 마을에 살고 있어 이들은 순식간에 의기투합해 올 3월 일을 벌렸다. 이들 가운데는 아이들이 시내의 큰 학교보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해 아이를 아예 전교생 41명의 초미니 학교로 전학까지 시킨 집도 있다.


이 학교 아이들 10명은 모두 근방 신평초등학교에 다닌다. 방과 후 2시30분쯤 이곳에 도착한 아이들은 음악놀이, 도서관 나들이, 동네 나들이 등 주제가 있는 놀이학습을 한다.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동네를 돌며 동네 지도를 그리고, 함께 시내 도서관에 다녀오기도 하고, 봄이면 매실을 저며 매실차를 만들고, 진달래를 따다가 진달래 화전을 만든다. 아이들은 노는 중에 솔숲생명학교가 계획하는 교육 목표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들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퇴근 후 학교에 모여 학부모 회의를 가진다. 여기서 학교 운영과 아이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필요한 사항을 결정한다. 이 선생은 “이 학교를 통해 결국은 아이만 크는 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커간다”며 “관심 있는 부모들이 공동 출연해 조합형으로 시작했는데 한 학기 운영해본 결과 지역사회와 함께 하며 함께 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한 가지 시도가 여름계절학교로 미술활동, 전통놀이체험, 염색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두고 지역 어린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첫 시도한 올 여름계절학교에는 과목에 따라 10~35명 정도의 지역 어린이들이 함께 했다.


겨울에도 겨울계절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 저마다 자유롭게 떠들고 있던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방과 후 같은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는다.

<김보경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