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현관광지 여기바우 아래쪽 암벽에는 '문연동천(汶淵洞天)'이라는 네글자가 새겨져 있다.

해동암각문연구회, 현장 조사 및 문헌 고증 통해 확인
문연(汶淵)-은둔할 곳, 동천(洞天)-하늘 아래 살기 좋은 계곡

관광객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간현관광지가 조선시대에도 명소였음을 확인하는 문헌 근거가 발견돼 화제다. 간현유원지 섬강철교 북단에는 다섯 봉우리가 차례대로 솟아 있는 오형제바우(바위)가 있다. 오형제바우 중 섬강철교 옆 작은 봉우리 하나를 '여기바우'라고 칭한다. 여기바우는 강물과 절벽이 어우러진 절경이다. 

유래에 따르면 '여기'는 여자 여(女)와 기생 기(妓)로 옛날 시인 묵객들과 기녀들이 어우러져 놀았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이 바위 아래쪽 섬강 물가 암벽을 살펴보면 '문연동천(汶淵洞天)'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논어 공자의 제자인 '민자건'은 벼슬을 사양하고 떠나며 "다음에 또다시 찾아온다면 그때 나는 문수(汶水)가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고사를 본떠 후대 문사들은 '문연'을 은둔할 곳을 뜻하는 말로 써왔다. 

'동천'은 하늘 아래 살기 좋은 계곡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즉 문연동천은 명승지라는 의미로, 해당 암각문은 간현유원지가 조선시대에도 명승지였음을 말해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간현유원지는 지금처럼 관광유원지로 개발되기 전 군사유격 훈련장으로 민간 출입이 엄격히 제한됐다. 또한, 현재까지도 철교 주변 수심이 깊고 물살이 급해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문연동천 암각문은 건너편에서 망원렌즈로 촬영된 사진만 유포되고 있던 것이 실정이다. 

▲ 지난 23일 진행한 현장 조사 사진. 문연동천 인근은 수심이 깊어 수상스포츠 단체 협조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해동암각문연구회(단장: 홍순석)가 현장 조사와 문헌 고증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양현모·여규창 씨 등 원주시 문화해설사와 함께 현장을 조사했다. 전문 수상스포츠 단체의 협조를 받아 물살을 가르고 암각문을 살폈다. 조사 결과 암각문은 기반암에 동향으로 가로 240cm, 세로 60cm 규모로 음각돼 있었다. 글자 하나의 규모가 가로 65cm, 세로 50cm였다. 

그동안 문연동천 암각문은 문헌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토정 이지함 ▷간홍 이기 ▷택당 이식 중 한 명의 필적일 것으로 추정돼왔다. 문헌고증팀은 '조성환여승람' 원주목 명승조에서 문연동천 암각문이 택당 이식의 필적으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록을 번역하면 '문연동천은 지정면 간현 아래 섬강 위에 있다. 깎아지른 벼랑이 우뚝 솟아 있고, 바위가 튀어나와 있는데 택당 이식이 <문연동천> 4자를 큰 글씨를 써서 새겼다. 푸른 파도와 맑은 물결에다 경치가 빼어나서 봄·가을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라는 내용이다. 

기록에 따르면 문연동천은 조선 중기에 택당 이식 선생이 은둔하며 경승(景勝)을 즐기던 장소이며, 문객들의 왕래가 끊기지 않는 등 각광받던 장소임을 유추할 수 있다.

홍순석 단장은 "문연동천 암각문은 SNS에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헌 고증이나 현장 조사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며 "현장 실측과 탁본 작업도 이번이 처음일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주시의 대표적인 관광유원지 개발과 홍보사업에서 문연동천 암각문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것 같다"라며 아쉬움을 밝혔다. 평창군 월정사 경내와 같이 여러 곳에 암각문 안내문 표지판을 설치해 탐방객의 이목을 끄는 다른 지역과 달리 아쉬운 점으로 언급한 것. 또한, 문연동천 암각문은 370여 년 전 택당 이식의 필적으로 조성된 금석문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17년부터 강원도 암각문을 조사하고 있는 해동암각문연구회는 지난 6년간 현장 조사를 진행하며 영동지역 조사를 추진해왔다. 지난해 1월부터는 영서지역 암각문 조사에 돌입했으며, 첫 번째 연구 장소로 원주 호저면 열녀문을 택해 조사를 펼쳤다. 

이를 통해 호저면 산현교 다리 밑에 있는 열녀암 음각에 대한 문헌 근거를 발견해 주목받았다. 오는 5월까지 행구동, 지정면 등 원주 전역에 있는 암각문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와 문헌 고증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윤혜 기자  yuunhyye16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