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엔 상인, 낮에는 주부·노인, 밤에는 직장인


바람이 제법 쌀쌀한 게 본격적인 가을이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휴식처로 ‘뜨고 있는’ 찜질방. 피로와 스트레스로 파김치가 된 직장인들이나 가사 일로 온몸이 쑤시는 주부들이나 환절기 기온차로 으실으실한 노인들에게까지 찜질방은 이제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쉽게 찾는 휴식 공간이 되었다.


찜질방에 가면 찜질방 마니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목욕’ 마니아에서 분야를 바꾼 이들도 여럿 된다. 이들에 따르면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어 청결히 하는 ‘위생’ 차원이지만 찜질은 여기에 ‘교제’ 개념이 첨가된 것이란다.


실제 넓은 공간에서 시간 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눕거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목욕탕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보통 찜질방은 불가마가 있는 ‘방사실’, 휴식을 취하는 온돌바닥의 ‘휴게실’ 그리고 황토나 숯, 옥, 수정 등으로 만든 따끈한 여러 개의 ‘체험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
즘은 불가마 없이 체험방 위주인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찜질방은 기계에서 나오는 열을 쐬는 사우나와는 달리 달궈진 돌을 통해 내뿜어진 열기를 쏘이는 것으로 원적외선 효과가 추가된다.
지난 16일 오후1시 우산동 상지보석불가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실내. 반팔,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 온다.


뜨끈뜨끈한 옥바닥에 허리를 붙이고 누워 있는 이들, 오른편 헬스실 런닝머신 위에서 속보를 하는 사람, 식당에서 한 그릇에 4, 5천원 하는 육개장, 미역국, 갈비탕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이들, 각 체험방에 있는 이들까지 줄잡아 100여 명이 안에 있었다.


찜질방이 40~50대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거나 화투를 치는 곳이라는 생각은 이제 옛말. 도박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가족 단위나 이웃, 친구 간의 ‘건강 휴식 공간’일 뿐이었다.


식사를 막 마쳤는지 후식 쟁반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 엎드려 이야기 꽃을 피우는 30~40대 주부 4명. 이웃 사촌인 이은 저마다 찜질방 예찬론자들. 1주일에 한번 정도 온다는 안광해씨(44)는 3살짜리 늦동이까지 데리고 왔다.


“아기까지 데리고 와서 이렇게 편하게 쉬면서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누워 있을 수 있고. 이 사람 저 사람 끌고 오는데 속내 이야기 하면서 친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 같아 좋아요.” 찜질방 2년차라는 또 한 주부는 “몸이 약해 늘 기운이 없고 그랬는데 몸이 개운해지고 하고 나가면 활기가 있다”고 말한다.


실내 온도 49도라는 빨간 불빛이 선명한 원적외선 불가마방. 원적외선으로 전신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게 특징으로 열효과를 피부 속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 인체 내 온열요법을 높여 대사작용의 촉진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두운 방안에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누워 있다.
24시간 문을 여는 탓에 언제나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시간대별로 주류들이 구분된다. 새벽 녘에는 주로 상인들이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목욕, 식사, 취침 후 늦은 아침에 다시 시장으로 나간다. 거의 집을 대체하는 장소인 셈. 점심 시간 무렵부터 오후까지는 주부, 노인, 대학생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동창회, 계모임, 노인정 모임을 마치고 오거나 아예 찜질방에서 모임을 갖는다.
손명옥(64) 할머니는 “경로당에서 13명이서 왔는데 땀을 빼니 몸이 가뿐하고, 돈 1만원이면 목욕하고 밥 먹고 잠자고 친구 사귀고 하니 정말 좋다”며 “나는 평소에도 1주일에 한번 정도는 꼭 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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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시간대에는 30대 이후 중장년층의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다. 야근을 한 뒤 눈 붙이려는 직장인들이나 술을 마신 뒤 피곤한 몸을 눕히러 오는 직장인들이다.
3~4일에 한번 꼴로 찾는다는 직장인 이장범씨(24)는 “회식 후 선배들과 오곤 하는데 피로 회복에 효과가 그만이고, 특히 감기 몸살 같은 건 금방 낫는다”고 말한다.


찜질방이 대한민국표 신문화로까지 각광받자 이에 발맞춰 몸을 지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헬스방, 마사지실, 산소방, PC방까지 갖추며 업그레이드해 나가고 있다.
찜질방의 업그레이드, 그 끝은 어딜까? 우산동 상지보석사우나 시설관리팀장 최연호씨(37)은 “아직도 할 게 너무 많고 끝도 없다”며 “계속적인 시설 투자가 없으면 손님을 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목욕 설비 20년 경력인 최씨가 직접 시공했다는 상지보석사우나는 체험방 벽에 암모나이트 화석을 붙여 놓았고, ‘에스키모방’ ‘산소방’ 등의 시원한 방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김보경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