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민의에 따른 정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가장 신뢰받는 정치제도이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방법으로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이상적 모델이다. 그러나 사회의 확장과 복잡성으로 인해 시민의 직접 참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신 시민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표에게 권력을 위임하여 통치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는 차선적 선택으로 민의가 왜곡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수 의견이 항상 옳을 수 없다는 점에서 소수 의견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이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다수 의견에 의해 선출됐으나 다수의 민의를 배반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은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며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민의를 충실히 대변할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갖는다. 한반도 위기를 비롯해 각종 사회현안은 단순 이견을 넘어 '적폐'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의 운영과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대선 기간 중에 세계적 탈원전 추세와 더불어 인근 일본에서의 원전사고를 교훈삼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에너지 정책을 모색할 것을 밝혀왔다.

 그 일환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점진적 탈원전을 약속했다. 이에따라 지난 6월 27일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고, 숙의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일시 중단이 결정되었다. 당시 야당은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에 거수기 역할을 하는 형식적인 절차라며 연일 비난을 퍼부었다.
 

 공론화 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을 구성, 14차에 걸쳐 정기회의를 갖고 건설 재개와 중단을 주장하는 양측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이행관계자 소통협의회를 구성했다. 지역순회 공개토론회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선정된 500명으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학습과 더불어 활발한 토론을 통해 양측의 의견을 논의했다. 10월 20일 공사재개를 골자로 정부권고안을 제출하며 활동을 마감하였다.
 

 이에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을 존중하기로 하고 신고리 5,6호기 원전공사를 재개했다.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여전하다. 애초 정부의 요식행위라고 비판했던 야당은 오히려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신뢰를 보내며 공사중단 등의 혼란에 대해 정부가 사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앞서 자신들의 의견을 뒤집은 것에 대한 해명부터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론화위원회는 공사재개에는 찬성했지만 과반이 넘는 의견은 탈원전에 찬성했다.
 

 이번 공론화위원회 실험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를 보완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견을 갖는 특정사안에 대해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의 대표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통해 숙의를 거치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숙의 민주주의라는 성숙한 모델을 제시했다.

 숙의 민주주의의 가치는 서로 다른 의견을 이해하려는 의지이자 대화에 대한 가치 부여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자신의 견해와 다를지라도 이를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사전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첨예하게 대립된 각종 사안을 해결하는데 있어 그간 이해집단 간 대립, 공권력의 횡포가 익숙한 모습이었다면 이러한 숙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숙의 민주주의는 본질상 지역사회와 지방자치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사회 현안에 대해 당사자의 범위가 넓어진다. 문막에 건설예정인 열방합발전소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안전함을 주장하고 건설 후에도 안전하게 관리하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해 폐기물의 원료 유입 가능성과 유해성과 관련해 원천적인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70%이상의 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이 심각한 원주가 친환경 에너지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무엇보다 관련 정보의 제공은 한정되어있고 시민의 의견 수렴과정은 여전히 부족하다. 원주시는 화훼단지 조성에 연계한 열병합발전소 건설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공론화 작업을 가져야할 것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향후 지방 자치의 성숙에 있어 점점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김형종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