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천 환경정화 활동에 나선 상지여고 '은조' 동아리 학생들.

지역사회 온기 전하는 여고생들…22년째 소외계층 봉사

흥업면 대안리에 있는 갈거리사랑촌은 은조 학생들이 오면 난리가 난다. 10여명의 학생이 시설 내 어르신들을 위해 춤을 선보이거나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치료 도우미로 활동하기 때문. 멀리서 달려오는 학생들의 그림자만 봐도 어르신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벌써 16년째 갈거리사랑촌에서 봉사를 하다 보니 시설 직원들도 학생들을 식구처럼 대하고 있다. 

상지여고 봉사동아리 은조(隱助)는 올해로 22살이 된 청년동아리이다. '숨어서 돕는다'라는 이름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역 곳곳을 찾아가 소외계층의 벗이 되고 있다. 주로 수업이 없는 토·일요일에 봉사활동을 하는데 갈거리사랑촌과 같은 복지시설을 찾거나 원주가톨릭종합사회복지관과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이 추천한 홀몸노인 댁을 방문하고 있다.  

2~3명이 한 조를 이뤄 어르신 댁을 청소하거나 말벗이 되어 드리고 있다. 때로는 친손녀처럼 할머니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거나 할아버지 어깨를 주물러 드리기도 한다. 가족 품이 그리운 홀몸 어르신들에게 은조 학생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은조는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시초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997년 판부면에는 '소쩍새 마을'이란 노인복지시설이 있었다. 상지여고 한 학생이 어르신을 돕기 위해 이곳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우연히도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가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신기한 마음에 또 다른 학우가 있는지 알아봤는데 7명이나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봉사하는 대신 동아리를 만들어 어르신들을 돕기로 했다. 

하지만 동아리를 만들어 본 경험도, 단체 봉사활동 경험도 없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에게 지도교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상지여교 교사 김민 씨는 22년째 학생들과 연을 맺게 됐다. 처음에 김 선생님은 학생들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봉사활동 확인서 없이 1년 150시간 봉사를 할 각오가 돼 있다면 지도교사를 맡겠다고 엄포를 놨다. 

봉사점수를 따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봉사할 준비가 됐는지를 알아보려 했는데 학생들이 흔쾌히 "그러겠습니다"라고 대답해 은조가 탄생했다. 은조란 이름을 지은 것도 '남에게 알리지 않고 숨어서 어려운 이들을 돕자'란 취지에서다.    

동아리 결성 후 처음 1년간은 전문 교육을 받는 데 힘썼다. 혼자 사는 어르신을 대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병이 있는 어르신에게 학생들의 활동이 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서였다. 원주시가톨릭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전문 교육을 받고 매주 홀몸노인 가정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르신 댁을 꾸준히 방문해 위급 상황에 처한 어르신을 병원으로 후송, 목숨을 살린 경험도 여러 번 있다.  

▲ 상지여고 '은조' 동아리 회원들.

시설 봉사도 열심이다. 소쩍새 마을과 장주기요셉재활원, 갈거리사랑촌 등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우들의 욕창을 일일이 닦아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민 교사는 "주말에 한창 뛰어놀고 싶은 나이에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예쁘기 그지없다"고 칭찬했다.  

무엇보다 은조 학생들이 대견한 것은 그들의 봉사활동이 누가 시킨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자발적인 행동이란 점이다. 은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선배 은조 회원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봉사를 먼저 한 유경험자가 후배들에게 은조 활동에 대해서 알려주고 면접을 통해 꼼꼼히 적격자를 가려내고 있다.

선배들이 후배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전통인데, 62명의 재학생이 이 과정을 통과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는 수련회를 열고 있는데,  한 학기 동안 봉사하면서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를 학생들이 스스로 점검하고 있다. 

은조 최예섬(2학년) 총모둠장은 "수련회에서 졸업한 선배 언니들과 은조활동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터놓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은조활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 교사는 "주말에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한다는 학부모님도 계신다"면서도 "하지만 학생들이 지역사회 구석구석에 온기를 더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 자녀들이 공부보다 더한 가치를 배우는 것을 느껴 고마워하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