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 가꾸기·청소 등 궂은일 솔선수범…반곡역사 시민쉼터 조성 일조

"반곡역과 마지막 함께 하는 것 운명처럼 느껴져 시민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퇴직 때까지 열심히 가꾸고 싶어"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바깥 날씨와 달리 반곡역 맞이방은 양쪽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으로 제법 시원했다. 작은 역사 안에는 중년 여성이 캔버스에 반곡역 풍경을 담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역사 바로 옆 소공원에도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나무그늘 아래서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반곡역을 시민들이 편안하게 발걸음하는 휴식처로 만드는 데는 정태진 전 반곡역장의 노력이 컸다. 

서울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18살 때 철도청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1981년 원주역으로 발령받은 그는 만종·동화·간혁역 등을 거친 뒤 1999년 반곡역에서 초임역장을 맡게 된다. 당시 반곡역 주변풍경은 공공기관이 들어서며 혁신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춘 지금과 달리 민가 몇 채를 제외하곤 농경지뿐인 시골이었다. 이곳에서 4명의 직원들은 2교대로 근무하며 역을 지켰다. 무정차 역으로 사람의 왕래도 없었기에 적적하게 느껴졌다. 

정 전 역장은 "조용한 역사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으기 위해 화단을 꾸미고 주변을 가꾸기 시작했다"며 "누구나 들러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화단가꾸기를 즐겼던 그는 취미를 살려 반곡역에 생기를 더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로 화단을 채웠으며, 소공원 곳곳에 직접 자르고 니스칠한 벤치를 설치했다. 망치질부터 나무전지까지 직접 도맡아 역사를 꾸미자 마을 주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벚꽃 명소로 유명한 반곡역의 아름다움을 먼저 알아본 이도 그이다. 당시 원주지역 관할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들을 모두 초청해 소머리국밥 잔치를 열며 벚꽃놀이를 즐겼다. 이제 반곡역은 벚꽃 개화시기마다 SNS 인증샷에 빠지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1년 간 근무 후 반곡역을 떠난 정 전 역장은 2010년 다시 이곳으로 발령받게 된다. 2004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반곡역은 2009년 그가 근무할 때부터 추진했었던 미술관으로 새롭게 개관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지역미술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관련 자료나 내부 시설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는 근무하면서 촬영했던 반곡역 사진으로 전시실 빈 공간을 채웠으며, 고장난 펜스를 고치는 등 10년 전과 같은 일을 묵묵히 했다. 소박한 휴식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반곡역은 점심시간이면 혁신도시 직원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오기도 하는 등 하루 평균 20~30명의 시민이 찾는 곳이 되었다. 

지난해 60세로 정년이 늘어나면서 2년 더 근무하게 된 그는 마지막 근무지로 반곡역을 택했다. 그는 임금피크제에 따라 직위해제 후 별도직군인 역무운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후배직원들에게 일에 대해 조언하며, 전반적인 업무를 지원하는데, 대부분은 역사 주변을 청소하고 가꾸며 궂은일을 맡고 있다. 

2013년 공공기관 직원들의 출·퇴근을 위해 정차역으로 임시 운행을 시작한 반곡역은 남원주역 개통과 함께 2018년 12월 폐쇄될 예정이다. 이는 정 전 역장의 퇴임시기와 맞물린다. 

그는 "애정을 쏟은 반곡역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다"며 "비록 역사로서의 기능은 잃게 되지만 이후에도 시민들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가꾸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