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구동 중앙시립도서관 1층 로비에는 대나무 그림이 한 점 걸려있다. 전문가들로부터 '세련된 필치와 묵색의 변화필법의 정직함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대나무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지난해 (사)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제3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도내에서 대한민국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대상 수상작이 나온 것은 '대나무이야기'가 처음이다. 

시상과 함께 대전 주관단체인 (사)한국미술협회에 귀속됐지만 현재 시민들이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높이 산 원주시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주시는 "지역의 자긍심을 드높인 작품을 시민들도 감상할 수 있어야한다"며 (사)한국미술협회로부터 작품을 1년간 유상 임대했다.

원주시가 지역 작가의 창작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작품을 매입한 경우는 있어도 유상 임대까지 해가며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도내 최초로 문인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유례없는 유상임대까지 가능하게 한 주인공은 원주여성서화인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옥수(49) 씨다. 사군자 중에서도 대나무를 좋아해 평소에도 대나무를 즐겨 그려 온 그녀는 2012년 특선과 2013년 입선에 이어 지난해 세번째 도전만에 하늘이 점지한다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고교 때 서예반 활동을 했지만 이 씨가 본격적으로 붓을 손에 잡은 것은 결혼 후 집 앞 서예학원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다. 남편을 도와 장사를 할 때여서 잠시 가게를 비울 짬을 내기도 쉽진 않았지만 "늘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학원으로 향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붓을 잡을 때만큼은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온전하게 '자신'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삶의 의미를 찾은 기분'이었다는 이 씨는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도 붓을 잡으러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이 씨의 일탈은 삶의 터전을 원주로 옮긴 뒤에도 계속됐다. 1993년 원주에 정착한 뒤에는 예당 김종덕 선생과 한뫼 김해동 선생 등의 지도를 받아 10여년간 서예에 매진했다. 강원서예대전에서 입선 3회, 신사임당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붓에 남자 같은 힘이 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글을 쓰는 일이 고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정형화 된 틀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 씨는 그 시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날로 지호 박채성 선생 문하에서 15년간 문인화를 그렸다. "유별나게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는 이 씨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 여유를 되찾고 호흡도 조절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문인화는 그녀에게 딱 맞는 옷이 됐다. 서예를 통해 탄탄하게 다져진 기본기가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 씨는 스스로를 "한 길을 쉼 없이 달려오거나, 붓을 놓지 않고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는 작가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평한다. 마음이 내킬 때만 붓을 들고 구석에 밀어놓은 작품을 다시 꺼내들기를 수차례. "욕심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작업할 때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터득한 자신만의 작업방식"이라고 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 그 이상은 없다는 설명이다. 

대상 수상 후 여기저기서 전시 제안도 들어오고,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됐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올해 호남대 대학원 미술학과에 입학한 것도 수상의 무게만큼이나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반곡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옥탑방에 화실을 마련한 것도 같은 이유다. 

"앞으로 선 굵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녀는 "당장의 목표는 내년 1월로 예정하고 있는 개인전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지만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고 즐기면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