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간 올해 서울대학교 기악과에 합격한 이들림(18) 군의 이야기가 세간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대 문턱을 넘은 게 대단한 것 같지만 이 군은 남과의 경쟁보다 더 이기기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이 군이 가진 발달장애는 아무리 강한 의지라도 사실상 이겨내기 힘든 장애다. 몸도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고, 마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군이 밤낮 없이 피아노를 치며 연습을 거듭해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가 피아노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군의 엄마 김미연(52) 씨는 어떻게 이런 실력을 쌓게 됐냐는 질문에 "들림이가 정말 좋아해서 내가 졌어요"라고 입을 열었다. 이 군은 피아노를 향한 애정으로 올해 서울대 기악과 정시모집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Ⅱ에서 최종 합격했다.

이 군이 피아노를 처음 갖고 놀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김 씨는 바이엘 1권 1번 '도레도레도'를 가르쳐줬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잊어버리는 걸 보고 그냥 놀이 삼아 두드리는 걸 지켜봐 왔을 뿐이었다.

그렇게 5년간 '도레도레도' 마저도 못 외우는 것처럼 보였던 이 군은 난생 처음 오르간을 보게 된 자리에서 평소 듣던 찬송가 한 곡을 화음까지 넣어 완주했다. 사실 이 군 가족에게 '기적'은 그날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김 씨는 이 군의 재능을 발견한 뒤 친지의 도움을 얻어 피아노를 가르쳤고, 집에서 함께 연습했다. 그래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부족한 실력이고, 또 음악이 힘든 길이란 걸 알기에 아들이 전공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태장중학교 진학 후 음악선생님이 매일 점심시간 음악실 열쇠를 빌려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 이 군을 본 뒤 전공을 제안했다. 

이 군이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장애학생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자 가족들도 아이가 정말 피아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이 군은 고된 연습과 끈질긴 자신과의 사투를 이겨내야 했지만 절대로 포기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가족은 한두 번 말린 게 아니지만 이 군은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치악고에 입학한 뒤 입시준비에 들어가 담당 선생님을 만났고, 김 씨도 매일같이 함께 울어야하는 고비를 만나게 됐다. 김 씨는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셨는데 연습곡으로 시작한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할 것 같으면 피아노를 그만 시키라고 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군은 그 한 곡을 꼬박 1년 동안 연습해 마침내 완벽하게 연주했고, 이후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김 씨는 지금 아들이 이 자리에 온 것에 대해 "들림이를 장애아로 여기지 않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며 연습시킨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군은 고등학생 시절 단체 '장애인먼저'가 매년 특수교사협의회와 함께 개최하는 음악캠프에서 독주를 하는 등 큰 무대를 경험했다. 2014년에는 평창에서 열린 2014평창스페셜뮤직&아트페스티벌에서 개막 연주를 맡았으며, '투게더 위캔'이 주최한 연주회 무대에도 여러차례 올랐다.

김 씨는 "사실 우리에게는 서울대 합격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들림이가 앞으로도 행복하게 연주하길 바라고, 그럼 듣는 이들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아이가 행복해하는 것을 찾아주고, 마음을 나누며 희망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는 너와 나의 차이가 두드러질 뿐 열등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는데, 모두가 장애를 그렇게 여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