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초농협 정한용(64) 조합장에게는 관용차가 없다. 아니 농협 관용차는 있는데 거의 활용을 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거의 사용을 안 해 일년에 기름 값이 몇 십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걷기를 좋아한다. 조합장에 당선된 2009년 이전 감사로 조합 일을 맡아볼 때에도 그는 항상 걸어 다녔다. 아마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뚜벅이 조합장'으로 불러도 손사래를 치지 않을 것 같다.

정한용 조합장은 "조합장이 돼서도 걷기를 중단할 생각은 없었다"며 "걸으면서 중요한 행사에 발표할 인사말이나 사업 등을 머릿속에 정리한다"고 말했다. 그의 집은 소초면 수암1리, 집에서 소초농협 본점까지 거리는 대략 8~9㎞정도이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반 정도 걸리는데 농협의 가장 중요한 일부터 자질구레한 업무까지 걸으면서 머릿속을 정리한다. 내일 마이크를 잡는 날이면 운동화끈부터 고쳐맨다.

걷기를 생활화하니 좋은 점이 많이 생겼다. 소초면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며 조합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체감할 수 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길을 걸으며 순이네 복숭아나무에 비료가 필요한지, 철수네 논두렁에 농약을 쳐야 하는지, 일일이 그의 눈으로 확인하고 직원에게 지시를 한다.

그 또한 복숭아와 벼농사를 33년째 짓고 있어 농작물이 자연재해로 고사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해 농사를 뒤엎는 경우를 보면 가슴이 매우 저리다고. 농민의 눈으로 보니 관심을 아니둘 수 없다.

그는 "올해는 너무 가물어서 비가 20㎜만 더 왔어도 들깨농사가 잘 되었을 것"이라며 "원주나 원예농협같이 큰 농협은 벌이를 잘해야 조합장이 될 수 있지만 소초같이 작은 농협은 조합원들 살림살이를 일일이 챙겨주고 신경써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침과 저녁, 조합원들과 "김씨, 이씨" 해가며 일일이 눈인사로 마주하고, 조그만 관심사도 챙겨주니 사람들과 정(情)도 많이 쌓게 됐다. 사람들이 털어놓기 힘든 인생살이의 쓰라림도 그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때도 많다. 30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 모두 이혼해 손주와 같이 사는 한 할머니 사연이 그렇게 마음이 쓰였다는 정한용 조합장.

큰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 할머니께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함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가끔 마트에서 손주와 함께 장을 보는 모습을 뵐 때면 "녀석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 되겠구나"라고 아이를 칭찬하며 주머니에서 1만원, 2만원씩 건네어 준다.

그는 "조합장이 돼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러다보니 우리 마을에 별 사연이 다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조손가정, 결손가정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정 조합장은 앞으로도 걸으면서 조합원들과 깊은 유대감을 쌓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소초면에서 이장일과 마을일을 맡아보며 7대째 주민들과 어울린 가풍도 정 조합장의 이 같은 행보에 영향을 미친 듯 싶다. 그는 소초농협 조합원들 모두 가족같이 살뜰히 챙기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