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명농원 전경. 낡은 주택과 축사가 밀집돼 있다.

대명농원 도시개발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수십년간 터전을 일구고 살아온 대명농원 주민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2007년 사업승인을 받았지만 8년째 보상도 받지 못하고, 생계수단조차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대명농원은 1953년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한센인 마을로, 주민들은 한센병환자라는 이유로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양계·양돈업을 하면서 군부대에 납품하는 등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도시개발사업 결정 이후 양계·양돈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생존수단을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축사들이 오랫동안 방치돼 환경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개발사업 진퇴양난

대명농원 도시개발사업은 호저면 만종3리 53만4천여㎡에 공동주택 4천500여 세대, 단독주택 500여 세대 등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7년 개발계획 승인 이후 본격화됐으며, 2010년 준공할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시공사로 참여한 풍림산업이 지난 2012년 부도를 내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면서 대명농원 도시개발사업도 삐걱거렸다. 풍림산업이 2013년 회생절차를 종료하긴 했으나 개발사업을 재개할 수준의 자금을 확보할 여력이 없었다.

이처럼 시공사 자금난 등으로 대명농원 도시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수년째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인 고충을 겪어야 했다.

다른 시공사를 선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총 보상금 980억원 중 계약금, 보상금 등으로 400억원이 지출됐기 때문에 이미 지출된 보상금과 앞으로 지급해야할 보상금을 해결할 수 있는 기업이 나타나야 한다.

또한 대명농원 도시개발사업은 2008년 실시계획인가를 받았는데 인가가 나면 중도금 180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약정도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부지기반 조성사업 등에 1천억원 가량이 더 투입돼야 하는 등 전망이 불투명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10년 가까이 양계·양돈업을 중단하고 보상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고령으로 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편견의 그늘에서 소외된 삶

마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넓은 대명농원이 펼쳐진다. 중앙 공터에 낡은 건물들, 구판장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담배'라고 적힌 녹슨 간판까지 옛날 풍경 그대로 멈춰있다.

허물어진 채 방치된 빈 축사와 집들 사이에 남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이 한 채씩 구별되고, 워낙 인적이 드물어 동네를 찾은 낮선 얼굴의 등장에 간혹 오가는 주민의 눈길이 한참을 머문다. 대명농원에서 시간과 함께 멈춘 것은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그들의 한 서린 '아픔'이다.

한센인은 전국적으로 1만1천100여명이 있으며 원주에 168명이 있는데, 그중 73명(약 67가구)이 대명농원에 거주하고 있다. 과거 마을 형성 당시 정부는 군대에서 한센병에 감염된 사람들을 대명농원으로 이주, 정착 시켰다. 아내들은 남편을 따라 마을로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양계·양돈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을 가져다 줬다.

주민 A 씨는 "애들을 키우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면서 "학교만 갔다 오면 대명농원에 산다고 따돌림을 당해 울며 돌아오는 아이를 달래며 가슴이 미어졌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가 일부러 매일 멀리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탔지만 여기 사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고 말하는 A 씨는 "지금도 밖에 나갔다가 누가 물으면 대명농원에 산단 말을 못하고 다른 동네를 댄다"고 털어놨다.

대명농원 주민들은 이렇듯 말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왔지만 자녀들만은 건실하게 키워 출가시켰다. A 씨는 자녀들이 다 도시로 나가 잘 살고 있는데 동네가 이렇다보니 손자들을 데려오기 꺼려해 자주 찾아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한센인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여전히 소외 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도내 양성환자는 강릉에 1명뿐

대명농원에 거주하는 한센인의 평균 연령은 80세에 가깝고, 70여명의 한센인 중 남편이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홀몸노인이 대다수다. 주민 B 씨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절반이 넘는 것 같다"면서 "외로움에 개발지연으로 생활고까지 겹쳐 사는 게 많이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대명농원에 남은 한센인들은 고령의 나이인데다 돌봐 줄 수 있는 자녀가 곁에 없는 경우가 많지만 편견 때문인지 대명농원을 찾는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없다.

그나마 마을에 있는 만종천주교회 대명원공소를 운영하는 천주교원주교구 학성동성당 관계자들과 신자들이 가끔 찾을 뿐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호저면 주민복지사업을 하는 성공회원주나눔의집 봉사팀이 매월 대명농원을 찾아 노인들을 위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질병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인식개선도 시급하다.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인 한센병은 과거 '나병'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나 그 명칭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의미 때문에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1873년 한센(노르웨이)에 의해 인류 최초로 발견돼 '한센병'이라 명칭했으며, 유전병은 아니다. 또한 의학의 발달로 완치가 가능하며, 초기에 발견할 경우 후유증도 거의 남지 않고 치료가 가능하다.

현재 도내 247명 환자 중 균을 옮길 수 있는 양성 환자는 강릉에 1명이 있지만 90세의 고령으로 실제 감염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나머지는 모두 과거 균을 갖고 병을 앓았던 '음성'에 해당한다. 또한 신규 환자도 줄고 있어 최근 10년간 도내에서 신규 양성 환자가 발견된 사례는 없었다.

한센인 지원을 담당하는 한국한센복지협회 강원도지부 박은경 본부장은 "한센병이 완치가 가능해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사람들이 한센병에 대해 갖는 오해와 편견이 여전해 사회적 냉대는 변함이 없다"면서 "그 때문에 신체적인 질병은 치료됐더라도 정신적인 삶의 질은 굉장히 낮고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내 한센인의 평균 연령이 73세이고 한해에도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다수"라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평생 한 맺힌 삶을 이어온 어르신들이 이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따뜻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동식·한미희 기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