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을 가리켜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렬이라고 말했다.

지정면 박병욱(78) 옹을 보면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시구가 떠오른다. 2004년부터 실버밴드 원년멤버로 활동하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음악활동을 그만뒀다.

그렇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지금은 지정면 대소사에서 무료 음악봉사를 하고 있다. 마을 경로당에 조그만 행사가 있으면 그의 아코디언에서 '동백아가씨' '삼다도 소식' '꽃마차' 등 흘러간 옛 노래가 구슬프면서도 정겹게 흘러나온다.

박 옹은 "원래 나이로는 일흔 아홉인데 남들은 이 나이쯤 되면 죽을 날을 바라보고 산다고 하더라"며 "하지만 실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대부터 음악이 좋아 독학으로 피아노와 색소폰, 플롯, 아코디언, 기타 등 5~6가지 악기를 섭렵했고 인생의 여유가 찾아온 60대부터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에 매진해 지금까지 푹 빠져산다.

박 옹이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14살 때 6·25가 발발하면서 고향인 충남 공주에서 경남 마산으로 피난을 갔다. 먹고 살기위해 중국집에서 그릇 닦는 일을 시작했을 때다.

공부를 썩 잘하고 머리도 좋다는 칭찬을 듣곤 했는데 허드렛일을 하는 어린 박 옹을 안타깝게 생각한 지인의 소개로 미션스쿨인 창신중·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박 옹은 그 곳에서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다.

"학교에서 매주 예배를 보는데 그만 거기서 서양음악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는 박 옹은 "테너와 베이스, 소프라노와 알토가 이루는 하모니에 빠져 그 후부터는 음악 기초부터 피아노, 기타 등을 독학으로 익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6·25 전쟁은 좋아하던 음악 대신 총을 들게 했다. 휴전이 된 후 공주로 돌아와 집안일을 거들다 20대 후반 지정면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살고 있다.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그것이 꼭 이뤄진다고 믿는다"는 박 옹은 "아무리 가난해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그 끈을 수십년간 놓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60대가 지나 삶의 여유가 찾아올 때쯤 원주시에서 실버밴드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가 단원으로 등록했다.

실버밴드로 10년간 활동하며 해마다 수십 차례 공연을 해왔어도 음악이 좋아 피곤하지 않았다. 지난해 공연장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지정면에서 음악 봉사를 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박 옹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손에 무엇인가 쥐어지면 금방 써버리고 어려움을 만나면 금방 포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과거 어렵던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에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열망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그는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면서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음악을 즐기면서 함께 나누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